“민생과 동떨어진 정책 … 정부 사고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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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나라당이 17일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발표를 강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18일로 예정된 이명박 정부와의 첫 고위당정협의회를 하루 앞두고서다. 그래서 당정 간에 미묘한 기류가 조성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고위원회를 열어 첫 고위당정협의에 임하는 당의 입장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혁신도시 재검토 ▶학교 자율화 ▶추경예산 편성 등 최근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당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재희 최고위원을 비롯해 권경석 정책위부의장 등 대부분의 참석자가 “민생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 “과욕을 부린다” “사고를 치고 있다”는 등 격한 톤으로 정부의 업무 추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첫 고위당정협의를 앞두고 있는 만큼 “정부가 당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도록 관계 설정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지도부가 정부에 대한 군기 잡기에 나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표현 수위도 높았다.

한 참석자는 “정부가 검증도 안 된 설익은 정책을 당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할 수 없도록 분명히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직인수위가 영어몰입식 교육 등 정리되지 않은 정책을 발표해 총선을 앞둔 당의 지지도를 떨어뜨린 경험을 떠올리고 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정부가 인수위 때처럼 조급하게 당과 조율도 하지 않고 정제되지도 않은 정책을 마구 남발하는 것 같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의 추경예산 편성 방침에 대해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추경예산을 편성해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건 국가재정법에 위배되는 것이며 공약에도 배치된다”며 “재정 지출을 확대할수록 국가 부채가 늘어날 게 뻔한데 그게 무슨 작은 정부냐”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첫 고위당정협의에서 실적 위주로 서두르는 정부에 대해 분명하게 문제 제기를 하자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최고위에 참석한 한 재선 의원은 “정부가 설익은 정책을 남발해 당 지지도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첫 고위당정협의에서부터 체계를 잡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18일 오전 7시30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첫 고위당정협의를 연다. 이날 회의에선 4월 임시국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 대책과 민생 법안, 경기부양책 등이 핵심 의제로 다뤄진다.

그러나 당 지도부가 정부의 일방적 정책 발표를 성토하기로 함에 따라 첫 당정협의부터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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