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 확대 … 인민대표제도… 중국, 실용 민주화 실험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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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 과학사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조셉 니덤(1900~95)이 예찬해 마지 않았던 중국 과학은 근대 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직접 적용하고 실험한 후에야 이를 이론화하려는 실용적 태도 때문이다. 먼저 이론을 세운 뒤 이를 실제 문제에 적용하는 논리력은 중국인들에게 취약한 영역이다.

‘민주’를 도입하려는 현대 중국에도 이런 특징이 엿보인다. 민주라는 제도의 틀을 만들어 놓고 중국 사회를 맞추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이런저런 민주적 절차를 우선 제한적으로 시험해 보는 실용적 민주를 택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내 나름대로의 민주주의’ 추진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이미 이에 관한 초기 토론이 있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정치 분야 참모로 알려진 위커핑(兪可平) 교수가 지난해 6월 ‘민주는 좋은 것이다’라는 글을 발표한 이후다. 그로부터 10개월 정도 지난 현재 시점에서 중국식 민주에 관한 구상이 알려졌다. 지난 12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베이징대가 공동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서다. ‘중국 모델의 가능성’이란 주제로 열린 이 자리에서 베이징대 옌지룽(燕繼榮) 정부관리학원 교수는 중국이 추구하는 민주적 제도의 내용과 형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개인에게 보다 많은 자유를 부여해 국민의 민주화 욕구를 해소한다. 둘째,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민생을 개선함으로써 공산당 통치의 합법성을 높인다. 셋째, 기층(基層) 단위에서의 자치와 민주 실험 실시로 초보적인 민주화 절차를 시작한다. 넷째, 인민대표제도·문책제도·공청제도와 같은 정책들을 통해 국민이 자신들의 의견을 직접 개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다.

이런 ‘중국식 민주’ 주장은 2004년 전 타임지 편집장이자 칭화(淸華)대 겸직교수였던 라모(Joshua Cooper Ramo)가 개념화한 ‘베이징 컨센서스(정치적 자유화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시장경제적 요소를 최대한 도입하려는 중국식 발전모델을 뜻함)’에서는 빠져 있던 정치체제와 민주주의 모델에 관한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눈부신 고도성장을 미국식 잣대가 아닌 중국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내용의 ‘중국식 발전모델’을 제3세계에 보급해 소프트 파워 영역에서 미국과 경쟁하려는 중국의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반론 또한 거세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중국의 최근 정치개혁은 전체주의는 벗어났지만 아직 민주주의에는 도달하지 못한 권위주의 체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내거는 나름대로의 민주주의란 경제발전 지상주의와 관료 주도의 권위주의를 특징으로 하며 실제 내용은 동아시아 저개발 국가들이 사용했던 발전 모델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13억의 중국은 그래도 나름대로의 민주주의의 길을 걷겠다는 움직임이다. 그 실험의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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