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새로운 對北제의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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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광복 50주년 기념식에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획기적인 대북(對北)제의를 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지금까지 한국의 통일에 관한 기본입장을 재확인하는 선언을 하는데 그쳤다.어떤 사람은 해방 반세기를 맞는 지금 새로운 통일제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그러나 문제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제의가 필요한가에 있다.이 두 주장중 어느 것이 옳은가를 알려면 지금까지 남북한이 무엇에 합의했고,한국은 무슨 제의를 해왔는가를 보면 알 것이다.
金대통령은 통일단계로 통일전 평화체제구축,평화체제 구축때까지정전협정 유지를,그리고 통일원칙으로 당사자 원칙,관련국에 의한평화체제 보장,남북한 기본합의서를 포함한 모든 남북한 합의사항준수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통일전 평화체제구축과 평화체제 구축때까지 정전협정유지는 남북기본합의서에,그리고 당사자 원칙은 7.4공동성명의 3대원칙에 포함돼있다.또 우리가 주장한 남북한 평화협정의 골격은 남북기본합의서에 포함돼 있다.
이렇게 볼 때 金대통령의 제안중 북한이 지금까지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사항은 관련국에 의한 평화체제의 보장뿐이다.
통일방안에 대해 남북한간에 명시적으로 반대되는 제안을 하고 있는 점은 두가지인 바 통일단계와 관련해 북한은 연방국가 수립을 주장하는데 반해 한국은 통일의 전단계로 민족공동체 구축을 주장하며,통일원칙과 관련해 북한은 당사자 원칙과 관련국 보장을반대하는데 반해 한국은 이를 찬성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국가의 실현가능성이 희박함은 자신도 인정할 것이다.우선 남북한의 상이한 정치체제.경제발전정도.의식구조를 고려할 때 남북한이 즉시 한 국가를 수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북한 지도자도 인류역사상 정치이념.경제체제가 다른 국가가연방국가를 수립해 성공한 예가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가장 중대한 문제는 당사자 원칙이다.북한은 美-북한 평화협정체결 없이는 평화체제 구축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미 동의한 당사자 원칙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정전협정 당사자가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법이론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북한의 저의를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한반도 분쟁당사자인 남북한이 주체가 되지 않은 평화협정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북한은 한국이 한국전쟁 당시 적대국이었던 중국과 평화협정체결 없이 국교를 수립하고 선린.우호관계를유지하고 있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제안에서 새로운 점이 있다면 평화체제에 대한 관련국의 지원.보장이다.
우리는 남북한 평화체제 구축에 미국의 참여를 반대하지 않는다.다만 미국은 다른 관련국과 함께 남북한 평화협정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비록 남북한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하더라도 상호간의 불신이 심각한 상황아래서 다른 일방이 이를 파기할가능성이 있다고 서로 의심할 것은 당연하다.이런 상황아래서 필요한 것은 주변 강대국의 보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또 관련국보장으로 북한이 원하는 北-美 평화협정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아닌가. 한반도 평화체제가 취할 형태에 대해서는 남북한간에 합의가 이뤄져야 할 뿐 아니라 주변강대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인내와 탁월한 외교노력이 필요하다.북한이 남북한 기본합의서에 의해 남북한간에는 불가침 선언이 채택 되었으므로 앞으로 남은 것은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이며,이로써 한반도 평화체제가 완성될 것이라고 믿는 한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체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미국은 물론 어느 관련국도 북한의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므로 북한은 결국 남북대화의 場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외교안보연구원연구위원.政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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