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방>해방50년과 韓.日 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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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세계 모든 나라의 문학을 비교.평가하면서 객관적 기준을 세워놓고 등급을 매기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언어와 전통,생활관습과 의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정한 문학적 수준에 이르면 우열(優劣)을 따지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이론이 있는가 하면 『문학의 진정한 가치와 목적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뛰어난 작품과 못미치는 작품을 구분하는작업이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반드시 성적과 순위가 나오도록 돼 있는 국가간의 스포츠나 이런저런 국제 경시(競試)대회가 아닌 바에야 문학예술을 놓고『A국보다는 수준이 높지만 B국보다는 낮다』는 식의 평가를 내릴 수 있으며,그것이 필요한지에 대해선 나 또한 자신 이 없다.하지만 세계화니,국제경쟁력이니 하는 말들이 지상의 과제처럼 회자되고 있는 터에 『세계속에서 아무리 보잘 것 없이 평가된다 해도 오늘의 한국문학은 뛰어난 수준』이라는 자화자찬이 과연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까.
지난해 10월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을 때 나는 韓日 양국의 문학을 비교하면서 「특수성과보편성의 차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세계문학을 주도하고 있는 서구(西歐)문학과의 공감대 형성이라는 차원 에서 일본문학은 확실히 한국문학에 앞서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그러나 그 후에 만난 몇몇 문인들은 『어떤 기준으로 보든 한국문학이 일본문학에 크게 뒤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 입장에서 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첫 수상보다 오에의 수상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까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45년을 분기점으로 할 때 가와바타는 전전(戰前)세대의,오에는 전후(戰後)세대의 작가기 때문이 다.
우리 작가들과 오에의 작품을 놓고 상대적으로 우열을 가리자는게 아니다.문학적 전통의 영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언어마저 빼앗긴36년의 공백이 우리로선 치명적일 수도 있다.하지만 작가적 개성으로 보자면 우리 쪽이 더 독특할 수도 있고, 체험의 측면에서도 해방과 함께 분단의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혹독한 전쟁을 겪었으며,끊임없는 정치적 격변을 체험해야 했으니 오에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에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浮上)하게 된 배경은 과연 무엇인가.노벨문학상이 대단해서도 아니고,특히 톨스토이.카프카.릴케.조이스등 불후의 명작을 남긴문인들조차 받지 못했던 것을 오에가 받았다해서 대수로울 것도 없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네 울타리 안에서 우리끼리의자위(自慰)는 아닐까.
이미 여러해 전부터 오에나 아베 고보(安部公房)등의 전후 작품 1백여편이 20여개국 언어로 번역돼 널리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번역에만 국한된 문제인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물론 정부나 문단차원에서 일본이 자기네 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데 힘을 쏟아오기도 했지만 세계 여러나라의 독자들이 즐겨 읽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는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해방이후 태생의 한 작가는 문화 전반에 걸친 일본의 우월주의에 대해 「우리보다 몇십년 빠른 서구문명의 모방학습 결과」라 단정짓고 있지만 그 말이 옳다해도 세계를 하나의 무대로 간주한다면 어쨌든 빠른건 빠른 것이다.
그보다는 한 중진 비평가가 조심스럽게 언급하는 바 「지난 반세기동안의 우리문학이 우리끼리만의 문학으로 존재해온 것은 아닌지,문학에 관한한 세계화.국제화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이제껏 이어져온 것은 아닌지」를 곰곰 되새 겨봐야 할 일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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