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뮤지컬어워즈] 초연·재공연에 더블캐스팅까지 … 1년간 완벽 해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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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 끝났다. 지난 1년 동안 무대 위에 올라가는 뮤지컬을 ‘모두 보는 일’이 마무리된 것이다. 50편에 육박하는 공연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고 난 지금, 솔직히 후련하다.

사실 처음 후보선정위원을 제안 받았을 때 난 쾌재를 외쳤다. 그 멋지고 신나는 뮤지컬을 하나도 빠짐없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누구 말대로 ‘천국으로 가는 계단’ 앞에 선 기분이었다. 하지만 계단은 걸어가야 하는 법. ‘걸어서 하늘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천로역정’이었다.

뮤지컬 관람이 더 이상 낭만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관극 일정 통보가 날아오면서 부터다. 마치 꼬박꼬박 날아드는 공과금 고지서 마냥 사무국은 한 주도 빼먹지 않고 빡빡하게 일정을 짜갔다. 치사하긴 하지만 고자질 좀 하자면, 티켓도 달랑 한 장만 주더라. 남들은 연인끼리 팔짱끼고 다정하게 공연 볼 때 촐촐히 혼자 앉아 공연 끝나고 집에 갈 때까지 입 한 번 못 떼는 건 그래도 참을 만하다. 초연에, 재공연에, 더블캐스팅된 배우들의 공연까지 꼭 보라고 몰아치는 건 숨이 턱밑까지 차오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똑같은 작품을 세 번 본 경우도 허다했고, 나중엔 노래까지 흥얼거리게 됐다. 낮 공연 보고 난 후 혼자 순두부찌개 사먹고 저녁 공연 보러 또 다른 극장으로 향했던 것이 지난 1년 동안 나의 주말 풍경이었다.

그래도 따뜻한 계절에는 공연 시작하기 전에 극장 앞을 산책하기도 하고 혼자 커피도 음미할 수 있어 나름 운치있었다. 그러나 겨울엔 ‘춥고 외롭고 배고픈’ 삼중고를 감내해야 했다. 하루는 목동의 천막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갔는데 마침 그날따라 한파가 닥쳤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는 도로변을 걸어 어렵게 극장을 찾아갔는데, 천막극장인 탓에 로비는 고사하고 엉덩이 붙일만한 공간도 없었다. 매서운 칼바람 부는 운동장 마당에서 어묵 꼬치 하나 사들고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던 그 밤은 이번 겨울 가장 추웠던 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해서 본 공연이 출품취소 되었을 때의 허탈함이란.

그뿐인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교가 있는 왕십리에서 인천에 있는 공연장으로 달려가느라 퇴근길 전철을 두세 번 갈아타고 두어 시간 서서 간 적도 있었는데, 그 복잡한 전철 안에서 김밥 한 줄 꺼내먹으면서 ‘창피해도 먹어야 해. 먹어야 화내지 않고 공연 볼 수 있어’를 되뇌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내 눈엔 ‘하늘가는 밝은 길’이 열린 것 같다. 그것은 모든 일정이 끝났기 때문도 아니요, 어디에서 출발하든 시간 맞춰 공연장까지 가는 길을 정확히 익혔기 때문도 아니다. 나무가 아닌 숲의 풍경으로 뮤지컬을 보게 된 것. 이것이야말로 더 뮤지컬 어워즈 심사가 나에게 준 가장 귀중한 선물이었다.

정수연<후보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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