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근본주의>3.폭력투쟁-정부탄압.테러보복의 악순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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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집트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곳곳에 깔린 경찰과 무장군인으로 상징되는 정권의 탄압이 워낙 심하기 때문이다.심정적으로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조하더라도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집트 정부에 의해 「광신주의자」「극단주의자」로 낙인찍힌 근본주의 운동가들은 감옥 아니면 지하에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은 이들을 체제전복을 노리는 불순세력으로몰아붙여 대대적인 검거에 나서고 있다.지난달 29일에도 이집트의 대표적 근본주의 운동단체인 무슬림형제단 조직원 2백명이 무더기로 체포됐다.
탄압에 대한 반작용은 폭력과 테러로 나타나고 있다.또 폭력혁명에 의한 이슬람정권 수립을 주장하는 과격주의가 싹트는 배경이되고 있다.일부 근본주의자들은 공권력이 잘 미치지 못하는 아스완이나 아스위트 등 이집트 남부지방을 무대로 경 찰이나 공무원.親정부적 이슬람교도.관공서 등에 대한 테러와 파괴활동을 일삼으며 극단적 좌절감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이들의 테러로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9백40명이 목숨을 잃었다.지난 6월말 무바라크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방문 도중 이들의 저격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알제리 근본주의자들의 좌절감은 「내전」을 몰고 왔다.
91년 12월 실시된 총선 1차투표에서 근본주의 정당인 이슬람구국전선(FIS)은 집권당인 민족해방전선(FNL)에 대해 1백88석 對 16석이라는 압승을 거두었다.그러나 FIS의 집권을 우려한 군부가 서방의 묵시적 동조를 배경으로 이듬해 2월로예정된 2차투표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알제리 역사상 최초의 다당제선거를 통해 바로 눈앞까지 왔던 집권기회를 박탈당한 근본주의자들의 분노와 좌절감은 군부와 군부를 지원한 서방에 대한 무차별테러로 이어졌다.90여명의 사상자를 낸 지난달말의 파리지하철 폭탄테러나 지난해말의 에어 프랑스여객기 납치사건 모두 알제리 근본주의 테러단체의 소행으로 알려지고 있다.
피로 얼룩진 알제리의 비극은 근본주의자들의 테러와 이에 맞선정부군의 무자비한 보복이라는 악순환 속에서 현재까지 3만5천~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외국인도 한국인 1명을 포함해 70여명이 희생됐다.
알제리 사태는 대부분의 이슬람 세속정권 집권자들에게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근본주의자들에게 자유로운 정치참여를 허용할 경우 초래될지도 모르는 제2,제3의 알제리 사태를 우려한 이들은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명분 아래 법을 통해 근 본주의 세력의정치참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특히 최근 들어 이집트에서나타나고 있는 근본주의자 검거선풍은 11월에 있을 총선에 대비한 예비검속의 성격이 강하다.무슬림형제단 등 근본주의자들이 무소속이나 다른 야당의 이름으로 출 마할 경우 집권당으로서는 실권(失權)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방의 이익에 반하는 제2의 이란식 이슬람정권 탄생을 두려워하는 서방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유보한 채 기존의 이슬람 세속정권에 대한 지지로 일관하고 있다.독재와 인권유린을 눈감아 주고 이들 정권에 대한 경제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75년 이래 미국은 이집트에 1백90억달러의 경제원조를 제공했다.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취임 이후 첫 방문국은 하산 2세 국왕의 강권통치 아래 있는 모로코였다.
***독재자.西歐 이해결탁 서방의 지원을 등에 업고 기존 집권세력은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가속하고,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근본주의자들의 폭력.과격주의가 확대.심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이슬람근본주의의 과격화는 이슬람 독재자와 서방의 이해가 맞아떨어 진 결과인 셈이다.
근본주의 세력에 대한 정치참여 허용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집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이집트의 경우 1백% 그렇고 튀니지나 모로코도 거의비슷하다.이른바 이슬람식 사회주의체제를 택하고 있는 리비아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부패한 세속정권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보는 것이다.「이제 당신들의 차례는 끝났다.이 제 우리가 나서이슬람의 관점에서 국가개혁을 시도할 때가 왔다」는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 침묵하는 대다수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카이로대학의 S교수는 탄압과 테러가 확대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길은 궁극적으로 민주화를 통해정치적 타협과 조화의 場을 열어 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한다.비록 처음에는 그로 인한 부작용과 혼란이 크겠지만 더 큰 부작용과 비극을 막는 길은 이 길뿐이라는 게 그의 애타는 주장이다. [카이로=裵明福특파원]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테러혐의로 체포된 이집트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재판정으로 떠나기에 앞서『알라 아크바르』(神은 위대하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SIPA PRESS=本社特約] 崔聖愛전문기자 (중앙아시아)裵明福기자(북아프리카) 李哲浩기자(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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