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현대미술관(MOCA)의 ‘진화하는 전설’ 전시실 입구, 여성용 구두를 본떠 디자인한 소파에 관람객들이 앉아 있다. 페라가모가 1978년 만들어 스테디 셀러가 된 ‘바라’ 구두의 2008년 버전인 ‘바리나’. 무지개 빛깔 구두가 다양하다. 운모로 만들어 투명한 샌들 바닥에 눈을 댄 채 바라보고 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왼쪽부터) [사진=페라가모]
페라가모 80주년 기념전시에 우리나라 대표로 초대된 영화배우 김태희. [사진=페라가모]
예술적인 목적으로 따로 창조한 예술 작품도 아닌, 상품으로 판매되던 오래된 구두를 미술관에 ‘모신’ 이유가 뭘까. 전시를 기획한 MOCA의 큐레이터 빅토리아 루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시대의 패션 아이콘을 창조해 냈다. 할리우드의 수많은 유명 여배우들 뿐만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패션 리더에게 자신의 구두를 신겼다. 예술이란 단지 벽에 걸리는 작품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 생활을 반영하는 미학적인 것 모두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구두가 MOCA의 기념 전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1936년께 만든 구두(사진 1)는 가죽이 아니라 옥수수·호밀의 대로 엮은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구두는 고대 이집트인이 신던 것으로 풀로 엮은 것이다. 그 이후 풀이나 짚 같은 재료는 가장 싸 서민적인 신발에만 쓰였다. 우리나라 짚신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재료로 페라가모는 명품 구두를 만들었다. 여름 휴양지 용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디자인이다.
요즘은 흔한 누드 샌들이지만 47년 페라가모가 만들었을 땐 “발을 그대로 드러내는 너무 과감한 디자인이어서 잘 팔리지 않았다.”(살바토레 페라가모 자서전)
나일론을 엮어 만든 샌들 윗부분 때문에 ‘보이지 않는’이라는 이름이 붙은 샌들(사진 2)은 가격이 30달러였다. 당시 이 돈이면 석탄 4t을 살 수 있는 엄청난 값의 구두였다. 페라가모의 첫 글자인 ‘F’를 닮은 힐 모양도 이때 처음 선보였다. 손 자수를 넣은 구두(사진 3) 역시 페라가모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그가 구두 윗부분을 손 자수로 장식하기 전까지 자수는 옷에만 쓰였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중국풍의 꽃무늬를 새틴으로 된 두꺼운 통굽에 장식하기도 했다(사진 4).
페라가모 구두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에게 알려지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세기의 연인 메릴린 먼로·소피아 로렌 등이 단골 고객이었다. 38년 주디 갈란드를 위해 디자인한 샌들(사진 5)은 코르크로 만든 굽에 형형색색의 스웨이드 가죽을 덧씌워 만들었다. 소피아 로렌이 신었던 55년작 짧은 부츠(사진 6)는 요즘 유행하는 ‘부티’의 원형 격이다.
상하이=강승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