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22.고려나전국화문經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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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인터뷰>가와다 사다무 나라 帝塚山大 교수 『고려나전은 그것을 만든 고려인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없을 정도로 보면 볼수록 그 정교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고려나전 연구로서는 세계적 권위를 가진 가와다 사다무교수는 고려나전의 특징을 한마디로 『섬세함에 있다』고 말한다.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대고려국보전」 학술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25일 방한(訪韓)한 가와다교수는 이번 전시가 고려나전에관한 한 다시 보기 힘든 「세기적 전시」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현재 가와다교수가 확인한 고려시대 나전으로 전세계에 전하는 것은 모두 14점.
여기에 고려시대 것인지 조선초 것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나전 3점을 포함한다 해도 17점에 불과하다.그런데 그중 8점이 「대고려국보전」에 전시되고 있다는 것.
『당마사(當麻寺)의 나전염주함(本紙 2월4일字 「해외문화유산을 찾아서⑤」보도)을 처음 봤을 때 세상에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물건이 있을 수 있을까 경탄했습니다.』 나라(奈良)국립박물관 학예과장직을 정년퇴임하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가와다교수는 최근에는 삼국.고려의 일반칠기공예품으로까지 연구범위를 넓혀 국내의 학술세미나에도 자주 참가하고 있다.
〈圭〉국내에서 절대적인 자료부족으로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한 미술사 분야가 있다면 바로 고려시대 나전칠기다.
고려나전칠기는 화려한 궁정문화가 꽃피었던 북송(北宋) 휘종(徽宗)시절 고위급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에 와서 『중국에도 없는 섬세.화려한 것』이라고 탄복했을 정도로 고려시대를 대표했던 유명한 공예품이다.
고려나전칠기는 해방후 한동안 일제시대 고려고분에서 출토된 두점이 국내에 전해져 왔다.그러나 이들은 6.25때 피난지 부산에서 화재를 당해 심하게 그을리는 바람에 나전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86년 국립중앙박물관에 나전대모국당초문불자(螺鈿玳瑁菊唐草文拂子)한점이 새로 소장될 때까지 완전한형태의 고려나전칠기는 단 한점도 볼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 나전에 대한 연구는 미미했다.나전에 대한 관심과 연구내용은 일본에서부터 전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고려나전의 아름다움을 안 것은 불과 70년전이다.아이로니컬하게도 비운으로 불에 그을려버린 고려고분 출토의 나전칠기가 계기를 제공했다.
1924년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現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고분에서 출토된 나전칠기 두점을 일본에 보내 수리를 의뢰했다. 손톱조각보다 더 작게 조개껍질을 잘라 섬세하게 무늬를 만들고 특히 투명한 바다거북껍질 밑에 화려한 색채를 넣은 고려나전의 모습은 일본의 나전수리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고려고분에서 출토됐다는 명백한 사실은 이 비상한 아름다움을 지닌 나전칠기가 고려 것임을 확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일본내에서 제작지가 밝혀지지 않은채 전해져오던 여러점의 나전칠기를 고려의 것으로 판정케 하는 계기가 됐다.
도쿄(東京)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나전국화문경함(螺鈿菊花文經函)역시 이 무렵 고려나전으로 새롭게 확인된 명품중 하나다.
일본에서 알아주는 나전칠기 연구가 가와다 사다무(河田貞.帝塚山大)교수는 이 경함을 가리켜 『전세계에 14점이 전하는 고려시대 나전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이 나전은 12세기 중엽 만들어진 이래 7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략적인 전세(傳世)의 내력이 알려지고 있는 것이어서 이채를 띤다.
당초 이 경함은 동해와 맞닿은 서일본 야마구치(山口)縣 일대의 유서깊은 가문인 오우치(大內)家에서 소장했던 물건이다.오우치 가문은 백제 성왕(聖王)의 셋째아들 임성(琳聖)태자가 일본에 건너가 일으킨 집안으로 전한다.『아마 이 경함 은 13세기중엽께 일본에 전해졌을 것』이란게 가와다교수의 추정이다.
그후 이 경함은 오우치 가문에서 세운 대녕사(大寧寺)에 전해졌는데 16세기 중반 오우치家를 물리치고 이 일대를 차지한 전국시대의 무장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에 의해 절이 불타면서 경함은 모리家로 넘어갔다.
모리家로 넘어간 경함은 그 후 귀중한 보물 대접을 받으며 4백여년간 대대로 전해졌다.
***바람부는 가을 국화밭 연상 도쿄국립박물관 한국미술 담당큐레이터인 사오토메(早乙女雅博)는 『일본 패전후 이 경함은 국유로 귀속돼 도쿄박물관으로 이관됐다』고 소장 경위를 밝히고 있다. 이 경함의 특징은 경함 측면에 새긴 국화꽃무늬에 있다.빽빽한 문양이 들어있는 여타 고려나전과 달리 여기에는 잎이 달린국화꽃이 듬성듬성 심어져 있어 마치 바람부는 가을날의 국화밭을연상시킨다.더욱이 가느다란 줄기 위에 슬쩍 얹혀있 는 국화꽃의운치가 더없이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가와다교수는 『줄기를 포함해 옆에서 바라본 국화꽃 모습 문양은 12세기 중엽의 청자상감 대접에 흔하다』고 말한다.이것이 이 경함이 남아있는 경함중 가장 앞서 만들어진 것임을 말해준다는 설명이다.
정양모(鄭良謨)국립중앙박물관장은 『같은 국화문양을 반복하면서도 여유있게 배치해 뛰어난 공간감을 보여준 것이 바로 고려공예의 우수성』이라며 『시원스런 멋이 배인 고려나전의 걸작』이라고평했다. 이 나전국화문경함은 9월10일까지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대고려국보전(大高麗國寶展)」에 출품돼 국내에는 처음소개되고 있다.
▧ 다음회는 地藏菩薩圖 입니다.
글 :尹哲圭기자 사진:崔正東기자,도쿄국립박물관 제공 자문위원:鄭良謨 국립중앙박물관장 安輝濬 서울대박물관장 洪潤植 동국대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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