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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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상록(羅常綠)입니다.』 우렁우렁한 목소리였다.
『생각나십니까? 청개구리 개구쟁이입니다.』 젖어머니 말에 아리영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영이 젖을 뗀 다음에도 농장집 살림살이를 봐주러 다닌 서귀포댁은 이따금 아들을 데리고 왔었다.열 살쯤된 소년이었다.
아리영 아버지가 영국으로 전근 발령 받은 것은 그 무렵의 일이다.어렵사리 외동딸을 낳고 친정집에 머무르고 있던 아리영 어머니도 런던으로 따라가야 했다.
떠나는 날 아침 소녀는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두 살짜리 아리영에게 청개구리 한 마리를 내놓았다.
하얀 실로 발을 묶은 손톱만한 그 청개구리에 어머니는 비명을질렀다. 『에그머니나!』 서귀포댁도 기겁하고 청개구리를 잡으려애썼으나 발을 묶은 실은 아리영 손에 칭칭 감긴 채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인간의 뇌리(腦裡)에 인화(印畵)되는 최초의 기억은 생후 얼마 쯤의 것일까.아리영이 기억해 낼 수 있는 가장 먼 영상은 이 청개구리의 모습이다.누에콩만한 무엇인가가 어머니의 편안한 품안과 더불어 아련히 떠오르는 것이다.
그 한 장의 컬러 사진엔 어머니 모습도,서귀포댁과 소년의 얼굴도 없다.단지 안개처럼 에워싸인 포근한 품안에 비취알처럼 파란 물체가 뛰고 있는 것이 보일 뿐이다.이것이 아리영의 최초의영상이다.
영상의 사연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것은 대학 다닐 때였다.
『서귀포댁 아들이 네게 준 선물이었단다.』 예쁜 장난감으로 청개구리를 아기에게 선사했을 그 소년이 보고 싶었다.
『아마 무당 연구를 한댔지.』 『무당을?』 왠지 외계인처럼 두렵게 여겨져 궁금증은 그만 사라졌다.
그 「소년」이 지금 여기 서있다.투박하나 은근한 품격 같은 것을 풍기며 당당하게 인사하며 서있다.비디오 필름이 초속(超速)으로 앞당겨진 느낌이다.
어롱을 든 소년이 마당으로 따라 들어섰다.그의 아들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맑은 눈초리가 꼭 같았다.
아버지 발치에 어롱을 놓고 아리영을 쳐다본 소년의 얼굴에 놀라움이 역력히 번진다.
『손잡니다.』 서귀포댁이 소년에게 말을 던졌다.
『장승처럼 섰지 말고 어서 인사 여쭈어라.』 아버지 것과 같은 하얀 운동모를 벗고 소년은 꾸뻑 절했다.
『잘 생겼네! 이름이 뭐지?』 아리영이 묻자 소년은 홍당무가되면서도 또렷이 대답했다.
『계원입니다.셀 계(計),으뜸 원(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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