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주최측도 당황한 "빗나간鎭魂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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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3일 오후 광화문네거리에서는 서울시 주최로「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희생자를 위한 진혼제」가 열렸다.
서울시가 내놓은 보도자료에는 시가 지난 5월부터 매달 열고있는 「광화문 설치미술제」7월의 작가로 선정된 이경근(李徑根)씨의 작품『산자와 죽은자』앞에서 삼풍 희생자를 위한 진혼제를 거행한다고 쓰여있었다.
사고 이후「삼풍신드롬」으로 사회가 시끄러운 때에 서울시 주최의 「삼풍 희생자를 위한 진혼제」는 기자들이 관심을 갖고 취재할 만한 내용이었고 예상대로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막상「진혼제」가 시작되자 기자들은 놀라움을 금치못했다.李씨가 읽어내린 조의문이라는 글에는 의류.음료수등의 조잡한 광고문구와 숫자의 나열로 가득 차있고 삼풍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일은 李씨 동료인 한 행위예술가가「예술」이라는이름으로 펼쳐보인 행위다.그는 밀가루를 머리카락.얼굴.가슴까지하얗게 바른 후 몸통만큼이나 큰 날고기덩어리를 껴안고,입에 대고,머리에 쓰는 난해한 행동을 선보여 관중에게 예술이라기보다 혐오감을 자아내게 했다.
퍼포먼스를 시작한지 30여분이 흐른뒤『이제 고기덩어리만 남았구나.여기 있어야할 무고한 희생자가 가버렸구나』라는 삼풍 희생자를 모욕하는듯한 말한마디를 불쑥 던졌다.
시끄러운 전자기타소리에 몰려든 시민들이 이 광경을 보고『도대체 무슨 짓을 하느냐』며 상기된 표정을 짓자 서울시 최호권(崔鎬權)예술계장은 당황한듯『나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며 그제서야 『당장 고기를 치워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삼풍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진정 위로한다 해도 부족한 마당에 이런 식의「진혼식」을 과대홍보까지한 서울시의 조치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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