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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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당신은 저의 암시를 좇아 제 목을 물었어요.그러나 드라큘라같은 날카로운 이빨이 없어서인지 당신의 이빨은 저의 경동맥을 꿰뚫지 못했어요.오히려 당신은 저의 목만을 애무했죠.물론 예측했던 거예요.아무리 최면에 깊이 걸렸다 해도 원 치 않는 행동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그래서 저는 주사기를 사용했죠.스스로 주사기로 제 목을 찔러 주사기를 통해 피가 흘러나오자비로소 당신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제 피를 받아 마셨어요.』 민우는 비로소 그때의 상황이 떠올랐다.그곳도 이곳처럼 파도소리가 요란했었다.
…싸늘한 파도소리가 주위를 휩쓸고 지나갔다.산바람이 풀숲을 스치면서 내는 소리다.민우는 차가운 바위에 걸터앉아 주미리가 건네주는 사발의 피를 들이켰다.그 피는 처음엔 비릿했으나 이내따스하고 달콤하게 민우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주 미리는 자기 몸 속에 있는 피를 한 방울이라도 더 빼낼 양으로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정성스레 사발에 담았다.그녀가 자기 목에서 피를 빼내는 모습은 마치 선녀가 머리를 감는 것 같이 순백하고 아름다워 보였다.그렇게 피를 빼고 받아 마시는 데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한줄기 햇빛이 비쳤다.그 햇빛은 마치 새로운 생명을 축복하기라도 하는 양 강렬하게 민우의 눈을 찔렀다.벌써 어슴푸레날이 밝은 것이다.민우는 다시 주미리에게 사발을 건네주었으나 더 이상 사발은 넘어 오지 않았다.그녀는 민우의 눈앞에서 황홀하게 죽어가고 있었다.그녀의 숨소리는 가빴으나 표정은 밝고 힘찼으며 눈빛은 기쁘게 민우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촉촉한 눈빛은 마치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같았다.
『제 영혼,제 안의 모든 것이 당신 속으로 빨려들어갔어요.이제 우리는 하나예요.당신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순간들은 그렇게황홀하고 행복할 수 없었어요.이제는 이별이에요.하지만 하나되는이별이죠.사랑해요.당신을 영원히 사랑해요.』 그녀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마지막 핏줄기가 사발에 괴고 있었다.민우는 그 피를 붉은 흔적이 없어질 때까지 깨끗이 하아 먹었다.민우의 눈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그러나 슬프지는 않았다.이제 그녀는 내 안에 있는 것이다.민우는 마치 드라큘라 같이 입술을 훔치고 주미리의 이마에 작별의 키스를 했다.그녀의 창백한 입술이 달싹거리며 무슨 얘기를 하는 것같았다.이때 주미리의 목소리가 마음 속으로부터 울려나왔다.
『이제 빨리 공항으로 가세요.일본으로 가는 첫 비행기를 타는거예요.일본에 가서 당신 꿈속의 일본왕의 상징을 찾은 다음에 돌아오세요.돌아온 후 어느 날 문득 당신이 저의 무인도 기법을떠올리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이 미 암시한 당신의 자기 최면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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