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저와함께>"아버지를 위하여" 한승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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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버지라는 존재는 자기 아들.딸에게 있어서만은 적어도 인격완성체인 신(神)의 다른 모습이어야 하며,그 신의 또 다른 이름이어야 하는 고독하고 슬픈 허상이다.신의 모습이 「 」이라면그 아버지는「'」이거나「”」이어야 하고 그것들 은 완벽한「 」을 향해 나아가려고 항상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때문에 아버지는….』 살부(殺父)의 시대,부성상실의 시대로 불리는 요즈음 모든 세상의 아버지들이 겪어야 하는 정체성 부재의 위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 나와 화제다.중진 소설가 한승원(56)씨의신작장편 『아버지를 위하여』(문이당刊)가 그것.
『아버지를 위하여』는 올해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성복교수 살부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하지만 이 소설은 당시항간의 여론처럼 김씨를 「죽일 놈」으로 몰아붙이거나 부권회복을목청높여 주장하지 않는다.한씨가 제시하는 부권 의 회복 방안은오히려 그 반대쪽에 가깝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개체로서의 인격이 존중돼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집니다.천재적인 학자 아버지 밑에 공부는 못하지만 사업재능은 있는 아들이 있을 수 있고,자수성가한재벌 아버지 밑에도 예술가 기질을 타고난 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 점을 실제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소설은 자진해 살부범의 변호를 맡은 이신명과 『아버지를 죽인 놈의 변호를 어떻게 맡느냐』며 노발대발하는 그의 아버지의 대립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류사를 가족사로 환원시킨다면 역사발전은 아버지 찾기와 살부의 연속적인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부성적 권위로 상징되는이성적인 것이 지나치게 경직돼 인간을 지배하려 하면 어김없이 저항이 있어 왔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 요.현대는 살부의 경향이 강한 시대라 할수 있어요.』한씨는 우리의 가족문화가 그동안 아버지의 역할보다 권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해 왔다고 말한다.그리고 어찌보면 그 귀결로 부권 상실의 상황이 초래됐는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생각을 털어 놓았다 .그래서 살부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목청높여 외치는 공허한 부권회복의 구호가 아니라 자리보다 역할에 충실한 부권의 실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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