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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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여성잡지 같은 것을 뒤적이다 보면 내외간의 밤살이에 대한 것이 더러 눈에 띄었다.
「하늘을 나는 선녀의 시간…」운운의 제목 아래 절정(絶頂)의황홀감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구구한 설명으로 메워져 있기도 했다.상당히 품위있다고 자부하는 어떤 여성지는 이슬 머금은 큼직한 분홍 장미 사진과 함께 릴케의 시를 실어 쾌 감을 풀이하고있었다.『장미의 내부(內部)』라는 유명한 작품이었다.
「어디에 이 내부에 대한 외부가 있는가? 어떤 아픔 위에 이같은 삼베가 받쳐지는가? 이 시름없이 피어난 장미의 내호(內湖)에 비쳐지는 것은 어느 하늘인가? 보라 장미는 흐드러지게 피어나 어떻게 사그라지는가를… 떨리는 손조차 그것을 헤쳐놓지는 못하리 장미는 스스로 자신을 지탱할 수 없어,그 숱한 꽃잎은 가득히 넘쳐 내부의 세계에서 외부로 괴어 흐른다.
그리하여 외부는 더욱 충만하여 닫히고 어느새 여름은 온통 하나의 방이 꿈 속의 하나의 방이 된다」 아리영은 이 시를 무척사랑했다.
자세하게는 몰라도 풍요로운 내면이 외부의 세계까지도 싱그럽게통합한다는 신비로운 상징시(象徵詩)라고 이해해왔는데,성적(性的)인 에로티시즘으로 풀이되어 있어 깜짝 놀랐다.릴케가 알면 뭐라고 할까.
그러나 곰곰이 되읽어보니 그렇게 해석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묘했다.문학작품이란,지어져 작가의 손을 떠나면 저 혼자 멋대로 걸어가기 마련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처럼 감미하다는 내부의 사정을 아리영은 실감치 못했다.「자신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흐드러지는 시간」과 「온통 꿈 속의 하나의 방이 되는 공간」.과연 그런 세계가 있는가.흥미 본위로 과대포장한 기사는 아닌가.잡지엔 갖가지 체위라는 것도 사진과 그림으로 곁들여져 있었다.
반듯하게 누워있는 것,옆으로 누운 것,엎드려있는 것,앉아있는것….팔.다리 모양까지 소상히 그려져 있다.
-이렇게 까지? 천속하고 서글프게 보였다.표지를 소리내어 덮고는 잡지꽂이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남편이란 무엇인가.새벽에 일어나 일하러 나가고,저녁에 돌아와잠자리를 함께 하는 존재.가슴 저미도록 사랑하다 결혼한 것이 아니니 살뜰한 애정의 나눔은 바라기 어렵다 하더라도 잠자리 정까지 덤덤하니 감동과 리듬이 없는 일상이 지루하 기만 했다.아버지와 어머니는 달랐다.부부이기 전에 「연인」인 것이 딸 눈에도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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