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흐름 거스르다 무너지는 한총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뉴스 분석1990년대 학생운동의 상징이었던 한국대학총학생연합(한총련)이 신임 의장 후보자를 찾지 못했다. ‘불패의 애국대오’라던 한총련이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93년 4월 한총련은 237개 대학의 연합체로 출발했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현재 40여 개 대학만이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의장 후보자가 나오지 않은 것도 초유의 일이다.

30일 한총련에 따르면 2008년 제16기 한총련 의장 선출을 위한 후보 등록기간인 지난 15일까지 한총련 의장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힌 대의원이 없었다.

한총련 관계자는 “2월 말 대의원대회가 열렸지만 후보 등록이 없어 ‘지체 공고’를 냈다. 곧바로 3월 다시 전국 대학에 후보자 지원을 제안했지만 마감시한까지 연락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신임 의장 후보로 나설 예정이었던 한 대학 총학생회장이 개인 사정으로 출마를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의장 후보로 나설 예정이었던 A대학 총학생회장은 “부모님 두 분다 많이 편찮으시다. 보살펴 드려야 해 최근 한두 달 동안 한총련 활동도 하지 못했다”며 “다시 선거에 나설 계획은 없고 당분간 학내 활동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총련 소속 40여 개 대학교 총학생회장과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 등 대의원 60여 명을 비롯해 150여 명의 학생들은 28일 한양대에 모여 긴급 대의원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대의원대회에서 등록금 투쟁 같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상운영 체제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 자리에서 김현웅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16기 한총련 투쟁본부장’으로 추대했다. 김 투쟁본부장은 ‘광주·전남 지역 총학생회연합(남총련)’ 의장을 맡고 있다. 한총련은 의장을 다시 뽑는 대신 당분간 비대위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대와 호흡하지 못했다”=98년 6기 의장을 지낸 손준혁(당시 영남대)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의장 선거가 무산된 것에 대해 “한총련이 기반을 잃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선상의 문제든, 외부 탄압의 문제든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시대에 맞게 자기 변화를 하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등록금 문제, 88만원 세대의 비정규직 문제 같은 보다 피부에 와닿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으면 해결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손 실장의 지적대로 한총련은 최근에도 크게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28일 한총련은 ‘(북한의) 개성공단 철수 사태를 빚어낸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규탄한다’와 ‘통일을 가로막는 구시대 악법 국가보안법 폐지하라’는 성명서를 냈다. 5일에는 ‘미국의 북 테러지원국 지명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경희대 산업공학과 학생 강경식(27)씨는 “멀게 느껴지는 정치적 이념, 주장만 내세우는 운동권보다 구체적으로 대학 생활에 도움을 주는 비운동권을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학생처 금명철 학생지원팀장은 “최근 학교에 ‘학생서비스팀’과 ‘학생감동팀’이 생겼는데, 이는 요즘 학생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쇠락의 길을 걷다=2001년 9기 한총련은 강령에서 ‘연방제 통일방안’을 삭제했다. 조직을 유연하게 만들고 학생들과 호흡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변화가 없자 2003년 거의 절반에 가까운 학교가 떨어져 나갔다. 2006년에는 서울대 총학생회가 탈퇴했다. 한때 한총련 현황 파악을 담당했던 교육과학기술부 공무원은 “이젠 담당 부서도 없다. 그만큼 의미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는 “사실상 학생운동은 사라졌다”며 “등록금 문제 정도가 이슈로 남아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강인식·백일현·한은화 기자

[J-HOT]

▶'여아 납치 미수 사건' 충격의 CCTV

▶머리카락 빠지고 온 몸에 멍 '잔인한 폭행'

▶"시신으로 발견돼야 수사하나" 네티즌 분노

▶"강릉에 넘어온 간첩들 부검 가장 기억에…"

▶기저귀 훔쳤던 엄마 "세상이 이렇게 따뜻한 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