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대화 나누다 보면 상상 이상 아이디어 튀어나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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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22면

“통섭이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편하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게 통섭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통섭 전도사’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통섭의 방법론

통섭(Consilience)의 개념을 국내에 전파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그는 어떻게 하면 통섭을 이룰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개구리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해 여름이었어요.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연구원들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연구하던 중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개구리들이 울음소리를 내는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요. 아무리 귀 기울여 들어도 어떤 개구리가 먼저 울고, 어떤 개구리가 따라 우는지를 모르겠습디다. 연구원들과 식사 자리에서 그냥 가벼운 화제로 꺼냈는데, 연구원들이 해결책을 주더군요.”

연구원들은 개구리가 있는 논에 빨간 불빛이 깜빡거리는 소리센서를 촘촘하게 깔았다. 24시간 비디오 카메라를 돌린 결과 개구리 울음의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최 교수는 “대기업 회장들과의 대화에서도 서로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주고받는 통섭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최 교수가 “개미는 각자 알아서 일을 하기 때문에 지도자 없이도 일사불란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생물학 분야의 최신 연구를 전하면 ‘셀프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는 식이다.

최 교수의 의생학(擬生學)연구소는 현재 아모레퍼시픽·CJ·SKT 등 유수의 기업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의생학은 동물의 생태계, 자연의 섭리를 현실에 적용하는 학문이다. 최 교수는 의생학의 발전된 형태로 영장류연구소 설립을 구상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연구원을 파견해 자바긴팔원숭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의생학도 기업인 등과의 교류에서 출발했어요. 통섭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목표를 정해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편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상상 이상으로 아이디어가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통섭을 잘 못하고 있어요. 한 가지 방법론으로 연구하기에는 너무 복잡해졌는데 정작 연구는 더 미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지요.”

최 교수는 통섭이 단순히 학문을 섞는 통합은 아니라고 했다. 새로운 학문의 창조 과정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심리학·신경과학·물리학이 모여 새로운 학문인 인지과학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더 많은 학자가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학문적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을 강조했다. 학문의 중심은 인문학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인문학에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이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단순히 통계나 수식을 접목하는 것이 아니라 두 학문을 통섭해 새로운 이론체계를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인지과학의 탄생 과정을 그 예로 들었다. 그는 “대학에서 통섭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 우리 세대와는 또 다른 학문적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지식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느냐고요? ‘영역의 의미가 사라지는 통섭’이 되지 않을까요. 기업과 사회가 통섭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만큼 대학도 바뀌어야 합니다. 물리학 전공자는 대학에서 물리만 공부해요. 하지만 사회에 나가면 복합적인 업무를 맡게 되지요. 대학에서 영역 구분 없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합니다. 영문과 학생이 물리학 수업을 들어야 새로운 지식을 만들 수 있어요.”

최 교수는 ‘충실한 고교 교육’을 선결 요건으로 봤다. 그는 “요즘 대학생들은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통섭 얘기가 나오니까 초등학교부터 통섭을 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오히려 고교까지는 기본교육에 충실해야 합니다. 미국 학생들은 고교 시절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충실하게 공부하고, 대학에서 다양한 통섭을 시도합니다. 이러다간 20년 뒤에는 미국과 우리의 학문 격차가 더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기본기와 통섭, 모두에서 뒤처지니까요. 정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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