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망했는데 회장은 돈 빼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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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박형남)는 28일 위장계열사의 회사 돈 35억원을 빼내 개인적으로 쓴 혐의(특경가법상 횡령)로 기소된 박건배(60·사진) 전 해태그룹 회장에게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박 전 회장은 1997년 해태그룹 주요 계열사가 부도난 이후 기업 구조조정 등을 목적으로 설립한 플로스에프앤씨를 통해 기존 해태그룹의 위장계열사 6곳을 경영하면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이들 계열사에서 35억4000여만원을 빼내 유용한 혐의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공소사실 중 2001년 횡령액 9억6000만원에 대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2001~2003년의 횡령액 1억원에 대해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3년, 그 이후의 횡령액 24억원에 대해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박 전 회장은 당초 불구속 기소됐으나 1심 재판 때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1심 재판 뒤 박 전 회장은 항소했으나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1심의 형량이 관대한데 검찰이 항소하지 않고 피고인만 항소해 어쩔 수 없이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박건배 전 회장 판결문 요약 =외환위기 이후 크고 작은 기업들이 명멸하는 과정에서 많은 기업인이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는커녕 온갖 탈법을 동원해 개인 치부를 했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살아남는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사법부는 이런 잘못된 관행에 대해 종언을 고하고, 엄정하게 그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피고인 박건배는 해태그룹 부도 이후 위장 계열사들을 자신의 개인금고처럼 이용했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채권자들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회사 돈을 개인 목적으로 전용했다. 박씨는 회사 돈 35억원을 자신과 아내의 차량유지비, 지인들의 회사 운영자금으로 쓴 데다 위장 계열사의 신용카드로 골프장과 특급호텔을 드나드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 해태제과의 부도로 직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데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총수가 자숙하기는커녕 위장계열사에서 거액을 꺼내 쓴 행위는 서민들에게 허탈감과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법원은 박씨가 기업 총수로서 경제적·사회적인 기여를 했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집행유예라는 관용을 베풀었다. 하지만 종전에 처벌받은 범행과 동일한 이 사건 범행을 보다 지능적인 방법으로 집행유예 기간에 저질렀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고히 함으로써 피고인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기업인들에게 경계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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