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1회성" 파격작품 한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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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미술이 뭐 특별한 겁니까.다 생활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예요.얌전은 그만빼고 재미나게 놀아봅시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미술에 반발하는 젊은 작가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일상과멀어지면서 미술 자체의 「성역」에 안주하려는 대세에 반기를 들고 미술을 다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의 하나다.여기에는 또 대중과는 상관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만 흐르는 세태를 비판하고 미술의 고유한 즐거움을 되살려보자는 의도도 깔려있다. 지난 5월부터 9월말까지 서울 소격동 선재미술관((723)5957)에서 열리는 「싹전」과 7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서교동 인스턴트갤러리((322)6624)에서 진행되는 「뼈전」「아메리칸 스탠다드전」은 이같은 젊은 화가들의 기성미술 에 대한 반성과 비꼼을 엿볼수 있는 자리다.
이들 전시는 미술관이나 화랑에 있는 작품을 일상의 가정집으로불러들였다는 사실에서 외형적인 공통점을 보인다.전시장에 있을 때와 집안에 걸릴 때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점에 착안해 이미 있던 집의 구조를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다.거실이나 화단뿐만 아니라 화장실과 창고 등도 작품 혹은 전시공간으로 이용된다. 우선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에 이르는 작가 16명이 참여하는 「싹전」은 전통한옥에 양옥건물을 이어 붙인 집에서 열리고 있다.또 집안은 일본식의 구조를 이루고 있어 전통과현대가 뒤엉키며 정체성을 상실한 오늘날 우리문화의 현실 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들 또한 자기 작품의 분위기와 걸맞은 장소를 직접 선택하면서 개성 있는 목소리들을 들려준다.화장실에 두꺼운 스펀지를 깔고 비디오화면을 음산하게 투사하는가 하면(최금화),정원에 있던 대리석식탁에 사각형이나 삼각형 등의 모양을 새 긴다(박모).또 실리콘으로 된 고깃덩어리에 붉은 조명을 비추면서 현대미술은 결국 조명과 화장.성형 등의 합작품에 불과하다고 풍자하는가하면(최정화),돼지를 주제로 세 명의 작가(김우일.오형근.최정화)가 인물사진과 설치작품을 한 방에 서 함께 보여주기도 한다. 「뼈전」과 「아메리칸…」은 별개의 전시이면서도 같은 곳에서동시에 열린다는 점에서 동일한 전시로 묶을 수 있다.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서 열리지만 행사를 마친 후에는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점에서 「싹전」과 구분된다.그래서 전 시장도 1회용품이라는 이미지를 빌려 「인스턴트 갤러리」로 명명했다.원래는단층이었으나 이번 전시를 위해 임시로 한 층을 더 올렸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뼈전)뿐만 아니라 미국 샌프란시스코(아메리칸…전)의 젊은 작가 등 모두 16명이 참여한다.이들은 공통적으로 미술이라는 단어에 스며있는 권위를 해체하는 데 1차적인목적을 둔다.사진.비디오.설치외에 영화와 시각디 자인.퍼포먼스도 공개되는데 망가진 컴퓨터,쓰다 버린 면도기,찢어진 벽지 등도 전시회의 무대로 사용된다.
그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예술작품의 1회성.현대 소비사회에서 예술은 따지고 보면 한번 쓰고 버리는 1회용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미국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맥도널드 상점을 사진으로 담거나(유재학) 파라핀으로 된 성기 모양의 두뇌를 불로 녹여 없애는 작업(박혜성)등을 통해 이들은 예술은 영원하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朴正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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