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悲劇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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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간의 삶에 있어서의「비극(悲劇)」은 두가지 의미로 나뉜다.
좁은 의미로서의 비극은 소설이나 영화.연극같은 예술작품속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사건을 뜻하며,넓은 의미로서의 비극은 인간의 존재나 현실적인 삶과 관련한 불행한 사건을 뜻한다 .예술작품에있어서의 비극이 유사(有史)이래 중요한 테마로 등장해 오고 있는 까닭은 그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비장감과 인간의 잠재적 위대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가령 영국(英國)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남긴 4대 비극,곧『햄릿』『오셀로』『맥베스』『리어王』같은 작품에서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주인공이 겪는 비극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운명과 대결해 운명을 초극(超克)하려는 주인공들의 강인한 의지에서 삶의 또다른의미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아메리카의 비극』『세일즈맨의 죽음』『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등 비극적인 내용의 현대 작품들도마찬가지다.그 내용이 아무리 비극적이라 하더라도 비극의 본질인암흑과 파멸만을 떠올리게 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비극,곧 현실속에서의 갖가지 비극에 부닥치게 되면 그것은 좌절감.갈등.고뇌와 곧바로 연결된다.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유형의 비극들은 당사자들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비극이기도 하기 때문이 다.그래서 제아무리 천재적인 예술가가 비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실제로 일어나는 비극보다 더 비극적일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현실속에서의 비극은 보통「죽음」으로 대변되지만 수명대로 살다죽었거나 병사(病死)한 경우까지 비극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돌발적인 사고가 사신(死神)을 불러왔을 때가 비극의 전형적인경우인데,특히 그것이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항력적 사고가 아닌,몇몇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한 사고일 경우 그 비극의 의미는 무한대로 확대된다.
이번 삼풍(三豊)백화점 붕괴 참사는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될만 하다.「내가 당하지 않는 비극은 비극이 아니다」는 인식이 부유층이나 권력층의 머리속에 그대로 자리잡고 있는한 비쉐한 사 건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美國)시인 에머슨의 말대로 과연「비극은 겪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자의 눈속에만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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