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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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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90년대 후반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Pfizer)의 연구팀은 새로 개발하던 심장병 치료제의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심장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압을 낮추는 실데나필이란 성분이 기대만큼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험 중단을 통고받은 남성 환자들이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왜 그만두느냐”고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이들은 먹다 남은 약의 반납도 거부했다. 연구팀은 실험대상자들에게 좀 더 자세하고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뜻밖의 부작용이 밝혀졌다. 심장뿐 아니라 성기의 혈관까지 확장시켜 발기를 지속시키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대박을 예감한 화이자는 발기부전에 초점을 맞춰 개발에 성공한다. 상품명은 비아그라(Viagra). 활력(Vigor)을 나이애가라(Niagara) 폭포처럼 넘치게 해준다는 의미다. 98년 3월 27일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판매 승인을 받았다. 내일이면 시판된 지 10돌을 맞는다.

비아그라는 의약품 시장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히트를 기록하며 화이자를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로 성장시켰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경구용 발기부전 치료제로서는 유일한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주사제와 보형물밖에 해결책이 없었다. 비아그라는 지난 10년간 18억 정이 소비되었으며 공식적으로 세계 3500만 명의 남성이 복용했다. 지금도 1초에 6알이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국내 판매가 허용된 것은 99년 10월부터다.

비아그라는 20세기 성(性)혁명을 마무리짓는 약으로 꼽힌다. 1차 혁명을 이끈 것은 50년대에 나온 피임약. 임신에 대한 여성의 불안을 씻어줘 성생활의 문을 활짝 넓혔다. 2차 혁명의 주역은 비아그라다. 고령화 사회의 도래와 함께 특히 노인들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어 파급효과가 컸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비아그라의 등장을 약 색깔에 빗대 ‘푸른 기적’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비아그라는 다양한 부수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차 부적응, 심부전증, 조루증, 당뇨, 기억상실, 뇌중풍(뇌졸중)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현대판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는 아스피린에 필적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재채기나 두통, 소화불량, 심장 떨림, 빛 공포증, 발기 지속에서 정자 손상, 저혈압, 심근경색 등 다양하다. 실명(失明)과 사망이라는 치명적 사례도 보고돼 있다. 그렇다고 복용을 꺼리는 사람은 드물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말한 대로 “인간은 성적 동물”이란 말이다. 하긴 학자들에 따르면 발정기가 따로 없이 사철 언제나 교미가 가능한 동물은 자연계에서 인간과 보노보(피그미침팬지)뿐이라니까.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