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쌀협상-核과 쌀로 트는 南北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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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수로와 쌀협상의 타결로 남북대화가 재개되고 北-美,北-日간수교일정이 대폭 앞당겨질 전망이 한껏 밝아졌다.그렇게 되면 한반도주변 4강에 의한 남북한 교차승인의 절차가 완료되고,그동안북한에 불리하게 짜여 있던 남북간 외교불균형이 해소되어 북한은심리적 여유를 가지고 개방정책을 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내부에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세력이 있어 개혁.개방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지만 경수로와 쌀협상에서 나타난북한의 행동양식을 보면 개혁.개방세력은 두발 앞으로,한발 뒤로를 거듭하면서 이념보다 실리를 좇는 실용주의 노 선을 정책기조로 정착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경수로와 쌀협상에서 일방적으로 유리한 합의를 끌어낸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다.북한이 어떤 협상카드를 가졌기에 2천㎿짜리 경수로에 이어 그렇게 많은 양의 쌀을 제공받고,그것도 한국과 일본이 서로 먼저 주겠 다고 경쟁까지 하게 되었는가.
북한은 먼저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미국을 상대로 핵위기를 유발해 아슬아슬한 벼랑외교로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냈다.북한은 핵개발동결의 대가로 경수로외에 미국과의 관계개선이라는 큰 외교적 선물을 확보했다.
北-美간의 관계개선이 가시권(可視圈)에 들어오자 일본이 초조해졌다.미국과 거의 동시에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전면적으로 개편되는 한반도중심의 동북아시아 새 질서에서 소외될지모른다는 것이 일본의 생각이다.거기에 북한이 내 민것이 쌀카드다.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인 꼴이다.수십만t의 일본쌀이 북한에 제공되면 그것은 北-日관계의 급진전을 예고하는것이다. 이번에는 한국이 급해졌다.핵위기와 경수로문제의 해결에한국은 조연(助演)역할밖에 못했다.일본이 먼저 쌀을 제공하는 사태가 오면 北-美,北-日 수교협상을 진행하게 되는 북한이 남북대화의 재개를 서두를 이유가 완전히 없어진다.그래서 한국은 남북대화재개의 기회를 돈으로 사기라도 해야하는 입장에 몰렸다.
다행히 굶주린 동포를 돕는다는 명분이 있어 정치적 부담은 없다. 북한은 쌀 몇십만t 받았다고 대남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것이고,한국이 러시아.중국과의 수교때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어깨너머로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최대한 개선.확대하는데 노력을 쏟을것이다. 한국은 경수로와 쌀 이후를 내다보는 확실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경수로와 쌀은 미리 쓰는 통일비용인가.그렇다면 그 전제가 되는 우리 통일정책은 지금 전개되는 사태에 비추어서도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것인가.그보다 통일정책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인가.통일이전의 서독에 동방정책은 있어도 통일정책은없었고,그것이 오히려 통일을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 한국에는 적용이 안되는 것인가.통일은 그것을 쌍방 또는 어느 한쪽이 주장하면 할수록 멀어진다는 역설은 무시해도 좋 은가.지금 전개되는사태는 이런 물음에 대한 정부의 조속한 입장정리를 촉구하고 있다. [金永熙大記者.常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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