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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횡단기>3.迷路의 얼음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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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춥고 배고팠습니다.』 23일(한국시간)밴쿠버 한인회가 주최한 95북극해 횡단원정대 환영식장에서 허영호(許永浩.41)원정대장은 답사를 통해 북극해원정 97일간을 이렇게 요약했다.그는번지르르한 수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그는 『얼음과 추위가 우리를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밤에 잠을 잘 땐 대원들의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고 덧붙였다.
〈관계기사 38面〉 북극해는 사막과 마찬가지다.열사가 아닌 빙판으로 무대만 바뀌었을뿐 가도가도 끝없는 빙원과 눈보라가 펼쳐진다.가끔 넘실거리는 북극해 개수면에서 해표(바다표범)가 귀엽게 고개를 내밀고 원정대를 엿보지만 매번 반갑지만은 않다.개수면과 해표는 북극곰이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사람은 길을 모르지만 곰은 길을 안다.북극해에선 모든 것이 살아있는 「미로」다.멀쩡한 날씨에 갑자기 눈보라 강풍이 몰아치는가 하면 얼음판이 『쩍쩍』소리를 내며 갈라지고,소리없는 불청객 곰이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예측불가능의 세계다.
원정대는 총 일정의 3분의2 가량을 북극 특유의 「화이트 아웃」에서 진행했다.분명 주위가 밝은 낮인데 하늘 어디에도 해는없다.그나마 「끝이 있다」는 희망을 주던 설평선(雪平線)도 없어 하늘과 땅(?)의 경계가 퇴색되며 높낮이.좌 우가 분간되지않아 불과 몇 발자국앞의 개수면을 예상하지못해 얼음물에 발을 적시기 일쑤다.
그러나 자연의 미로 속에서 분별력까지 「화이트 아웃」되어선 만사가 끝이다.손목의 나침반과 全지구위성중계위치확인시스템(GPS)이 그나마 위안이 되며,무엇보다 대원들은 수십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감각을 체득했다.북극곰을 닮아서일까.그들 에게도 5월초께부터 「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행운일 수도,생존본능일수도 있다.
許대장은 원정초기 난빙대를 넘으며 『낮고 밝은 곳으로 가라』고 대원들을 가르쳤다.조류에 의한 난빙활동이 왕성한 곳은 먼 하늘이 검게 변한다.낮은 얼음을 택하는 것은 고산을 피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극지행 다섯차례에서 우러난 許대장의 이같은 체험론은 대원들의감각을 증진시켰다.김범택(金凡澤.32)대원은 바람에서도 「길」을 느끼게됐다.『북극의 유빙(流氷)은 조류에 따라 움직이는 커다란 「배」입니다.대개 남풍이 불면 이 배는 북 쪽으로,서풍이불면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아침6시에 일어나 제 자리에서 돌며 바람부터 느껴보곤 했습니다.』 감각은 일단 체득되면 자연에 대한 일체감과 안온함을 배양한다.許대장의 고교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인 장기찬(張基瓚.41)대원은 원정성공후 북극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뜻밖의 답변을 내놓았다.『한바탕 꿈처럼 느껴져그곳이 무척 아름다워 가끔 날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밴쿠버(캐나다)=林容進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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