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연극 ‘줄리에게 박수를’ 현실과 연극의 절묘한 연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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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자-. 대사 시작했는데 두 분이 이제야 들어오시고 계시군요. 그럼 늦게 들어온 두 분 자리에 앉으면,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막이 올라가기 무섭게 출발부터가 애드립이다. 자칫 치기어리다고 보기 쉬운 부분, 그러나 배우의 억양은 여유롭다. 그만큼 객석과의 호흡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표정은 장난끼로 가득차고, 시선은 양 옆으로 나뉜 객석을 왔다갔다 한다. 혼자 넋두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연극 대사를 읊조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갈망하는 눈길로 객석을 붙잡는다.

연극 ‘줄리에게 박수를’은 이처럼 현실과 연극을 오가는 작품이다. 공연엔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장면이 뮤직비디오처럼 편집돼 등장한다. 주인공 석동(김영민)은 햄릿의 주인공이다. 상대역인 오필리어의 선정(이진희)을 사랑한다.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아 술을 핑계 삼아 반지를 건네려고 한다. 그러나 선정의 마음은 딴 데 가 있다. 4년전 연기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으로만 남아, 죽은 ‘로미오’(정원조)를 잊지 못한다. 현실은 오필리어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줄리엣에 머물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독백은 사실 현실속 석동의 심정이기도 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3각 관계. 이 얼마나 상투적인가. 근데 작품은 신선하다. 이유는 절묘한 이음새 때문이다. 현실과 상상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건 특별한 설정이 아니지만, 작품은 이를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고 쿨하고 세련되게 엮어낸다. 석동의 투덜거리는 대사가 어느새 햄릿의 절규로 이어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며 놀이를 하는 와중에 무대가 눅눅한 연극 연습실로 넘어가는 식이다. 보통의 예측과 상상력보다 한 수 위의 무대를 보여줄때, 관객은 즐겁다.

주인공 석동은 생계를 꾸리고자 새벽마다 우유를 배달한다. 이중 남는 몇 개를 챙겨 오필리어에게 건네주곤 한다. 다른 인물 모두 가난한 단원들이다. 방황하고 절망하면서도 현실을 붙잡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어쩐지 ‘88만원 세대’인 요즘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쏙 빼 닮았다. ‘줄리에게 박수를’는 결국 상처받고 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지금 20대에게 박수를’ 보내는 작품이다. 5월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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