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44> 일본 대학축구가 강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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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주말 덴소컵 한·일 대학축구 정기전 취재차 일본 도쿄를 다녀왔다. 축구 기자로서 부끄럽지만 이번에 도쿄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일본이 대학생 스포츠 축제인 유니버시아드 축구에서 3연패를 이뤘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해 준 사람은 덴소컵 실행위원장인 마사히로 이누이였다. 그는 2005년 터키 이즈미르 유니버시아드에서 일본의 대회 3연패를 지휘했던 감독이었다. 일본은 2001년(베이징), 2003년(대구)에도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1991년 영국 셰필드 대회 우승 이후 입상한 적이 없다.

마사히로는 일본 대학축구가 강해진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93년 J-리그가 출범하면서 고교 유망주의 프로 직행 바람이 불었고, 대학축구는 쇠퇴했다. 그런데 대다수 고졸 선수가 프로에 와서 기량의 한계를 느꼈고, 한번 꺾이면 다시 시작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기량을 쌓은 뒤 프로로 가자’는 기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마사히로는 “남들보다 축구에 늦게 눈을 뜨는 대기만성형 선수가 있다. 대학에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면서 기량이 급성장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일본축구협회의 꾸준한 관심과 투자도 대학축구를 살리는 힘이 됐다. 일본은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이 장기간 해외 전지훈련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번 덴소컵에 출전한 대표팀도 유럽에서 보름간 전지훈련을 했다. 유서 깊은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23일 열린 제5회 덴소컵에서 한국은 일본에 1-3으로 역전패했다. 스코어도, 경기 내용도 완패였다.

한국 대학축구도 일본과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다. 염기훈(호남대), 곽태휘(중앙대), 서상민(연세대) 등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국가대표 신예들이 대부분 대학을 거쳐 프로로 갔다. 결국 한·일 축구의 우열은 ‘국가대표의 모태’인 대학에서 결판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대학축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학축구연맹은 올해 처음으로 ‘1-2부제’를 시행한다. 지난해 대회 성적을 토대로 1-2부를 나누고, 6월 열리는 전국대회는 1부(화랑), 2부(충무) 팀이 별도로 경기를 치러 각각 우승팀을 가린다. 매번 예선 탈락하던 하위 팀들에 동기 부여를 해 주겠다는 뜻이다. 매년 1부 하위 네 팀과 2부 상위 네 팀을 맞바꾸는 ‘업-다운’도 실시하기로 했다.

5월 1일 출범하는 U-리그도 신선하다. 수도권 10개 팀이 대학 캠퍼스 운동장에서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연중 리그를 펼치는 것이다. 선수들은 동료 학생들의 응원 속에 경기를 하고, 프로의 연중 리그를 대비한 경험을 쌓게 된다.

지도자도 한눈 팔지 못할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선수 만들기’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더 이상 ‘운동 기계 제작소’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영재 기자·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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