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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테러는 현실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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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9·11테러 발생 한 달째인 2001년 10월 11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조지 테닛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부터 정보보고를 받고 경악했다. 알카에다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러시아에서 훔친 10kt의 핵폭탄을 뉴욕시로 반입했다는 내용이었다. 화들짝 놀란 미 정부는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에게도 알리지 않고 뉴욕에 비밀요원을 급파해 폭탄을 찾도록 했다.

뉴욕 중심가인 타임스 스퀘어 반경 1㎞ 이내에만 500만 명 이상이 활동한다. 만약 평일 정오에 맨해튼 한복판에서 핵폭탄이 터진다면 이들은 모두 생명을 잃게 된다. 또 추가로 수십만 명이 건물 붕괴, 화재, 방사능 낙진 등으로 수시간 내에 사망한다. 핵폭발로 발생하는 전자기파는 휴대전화 등 전자 통신장비를 망가뜨린다. 부상자들이 병원과 응급치료센터에 넘쳐나고, 소방관들은 여러 날 화재 진압으로 쩔쩔맬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알카에다가 워싱턴을 핵공격할 것에 대비해 딕 체니 부통령을 비밀 장소로 옮겨가도록 했다. 유사시 행정의 공백을 막기 위해서다. 수백 명의 연방 공무원이 부통령을 따라 비밀 장소로 이동해 비상 행정부를 준비했다.

이 첩보는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미 정부는 이 사건을 통해 핵테러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현재와 같은 핵정책을 유지한다면 세계 주요 도시 한 곳이 2014년 이전에 핵테러에 노출될 가능성이 50% 이상이라는 것이다.

세계적 핵물리학자 리처드 가윈은 지난해 3월 미 의회에서 “미국과 유럽 도시들이 핵무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한 해에 20%”라고 증언했다. 매튜 번 하버드대 교수는 앞으로 10년간 핵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29%라고 추정했다. 이는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와도 일치한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핵테러 위협 가능성은 더 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 최대 부호인 워런 버핏은 “핵테러는 불가피하다”며 “핵테러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핵테러를 예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있긴 하다. 이른바 ‘3금(禁)정책’이다. 첫째, 핵무기를 느슨하게 관리하는 걸 금지해야 한다. 가능한 한 빨리 모든 핵무기와 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비핵 보유국의 우라늄 농축 또는 플루토늄 재처리를 막아 새로운 핵 보유국의 출현을 금지해야 한다. 셋째, 핵무기를 보유한 8개국(북한은 제외)이 새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금지해야 한다.

핵테러를 막으려면 미국 혼자 힘만으론 안 된다. 3금 정책은 세계가 직면한 공동 위협에 맞서기 위해 지구촌 차원의 공조가 절실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핵테러 방지를 위한 국제 연대’도 설립돼야 한다. 핵무기나 핵물질이 테러리스트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물리적·기술적·외교적 정책을 통해 핵테러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이 기구의 역할이다.

미국 등 핵 보유국들이 핵무기를 폐기하는 네 번째 금지조항도 요구된다. 미국·러시아가 안보를 위해 핵무기가 필요하다며 핵포기를 거부하면서, 비핵 보유국에만 핵개발 금지를 강요한다면 설득력이 없다. 핵 보유국들은 새롭게 핵물질을 농축하지 않고, 핵실험을 중단하며, 핵 선제공격을 포기하고, 새 핵무기 개발을 금지해야 한다.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없애자는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며 체념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미래의 안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상상력과 적절한 실천 방안, 확고한 결심이 있다면 핵테러를 막을 수 있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 과학·국제관계연구소장
정리=정재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