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바꾼다기에 기대했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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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광주 지난 대선 이후 정치권을 향해 눈을 감고 입을 닫았던 광주시민들에게 총선을 두고 말을 붙이기란 쉽지 않았다. 선거를 스무 하루 앞둔 19일 밤 식당과 술자리에선 흔히 안주가 되곤 하던 정치인 험담조차 오가지 않는 분위기였다. 택시기사 김영균(55)씨는 “17대 총선 때가지만 해도 하루 열 손님 모시면 네다섯 분은 정치 이야기를 했지만 대선 때부턴 그런 분들이 전혀 없다”고 침체된 여론을 전했다.

말은 아껴도 시민들의 얼굴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과 당 지도부의 갈등 소식이 전해진 20일 특히 그랬다.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이 단골로 찾는 서구 양동시장 상인들은 하나같이 당을 탓했다. 건어물을 파는 임모(64·여)씨는 “물갈이한다기에 좀 뭘 해보려고 하나 싶었더니 또 저러고 있다”며 혀를 찼다. 경북 경산이 고향이라는 과일상 박상문(65)씨는 “민주당에 또 표를 줄지 결정 안 했다”고 앞세운 뒤 “싹 바꾼다고 떠들기에 지켜봤는데 잘 안 되는 모양”이라며 고개를 돌렸다. 전남대 교정에서 만난 학생들도 입장은 같았다. 법학과 4학년 조소현씨는 “그동안 진행돼 온 공천 물갈이를 보며 국민들에게 잃은 신뢰를 되찾으려고 애는 쓰고 있구나 생각했다”며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세운 원칙이라면 따르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공천에서 배제된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DJ 차남 김홍업씨의 무소속 출마에 대한 동정적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광주역에서 만난 택시기가 박승원(51)씨는 “정치를 너무 오기로 해서는 안 된다”며 “지나친 자기 욕심”이라고 쏘아붙였다. 취업준비생 김성민(31)씨는 “DJ가 기여한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지금은 그 잔재들이 오히려 호남 사람들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느냐”며 “자신들은 억울하다지만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 당적을 옮긴 손학규 대표에 대한 시선은 기대 반 의구심 반이었다. 동구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양이호(59)씨는 “계파들끼리 나눠 먹기 하겠다고 나서는데 기반이 없는 손학규가 무슨 힘을 쓸 수 있겠느냐”며 “한나라당 색깔을 벗고 어떻게 변화한 모습을 보여줄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판단을 미뤘다. 고교 수학교사인 노경자(56)씨는 “손 대표가 대선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맡고 있지만 민주당이 지역당 이미지를 벗고 대안 세력이 되는 데 필요한 인물”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광주=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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