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중인 삼성, 창립 70돌 잔치도 생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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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삼성그룹이 22일 ‘고희(古稀)’를 맞는다.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이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 간판을 내건 지 70년 만이다. 출발은 평범했다. 28세의 청년인 이 전 회장은 자본금 3만원으로 지하 1층, 지상 4층의 목조건물을 세우고 그곳에서 청과물과 건어물·국수를 팔았다.

이렇게 시작한 삼성은 이제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견주는 거대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59개 계열사, 국내외 임직원 25만 명에 연간 매출은 150조원에 이른다.

특히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넘지 못할 산으로 보였던 일본 소니 등 쟁쟁한 해외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삼성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만만치 않다. 수출만 해도 2006년 700억 달러로 국가 전체 수출액의 5분의 1(21.5%)을 차지한다.

삼성이 걸어온 길은 생필품 위주의 경공업 시대→ 중화학·중공업 증흥기→IT 기기 등 첨단산업 도약기로 이어진다. 한국 경제의 성장과 우리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사와도 궤적을 같이한다.

50년대 초반 제일제당· 제일모직을 설립해 기업 면모를 갖춘 삼성은 60년대엔 동방생명(현 삼성생명)과 삼성전자공업을 세우며 국내 금융·전자 산업의 기틀을 다졌다. 또 70년대엔 중공업 분야 진출(삼성중공업·삼성석유화학)에 이어 80년대엔 삼성반도체통신을 세우며 첨단산업 분야 진출의 길을 텄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추광호 미래산업팀장은 “반도체·휴대전화·LCD 등 글로벌 초일류 브랜드로 자리 잡은 국내 제품 중 상당수가 삼성의 손에서 처음 탄생했다”고 말했다. 87년 그룹 경영의 지휘봉을 넘겨받은 이건희 회장은 ‘우물 안 개구리’식의 기업 경영 마인드를 국제화했다. 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비롯해 올림픽 파트너십 참여, 글로벌 인재 확보, 신경영 등을 통해서다.

하지만 칠순을 맞은 삼성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다. 그룹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의혹 폭로와 뒤이은 특검 수사로 인해 ‘경영 시계’는 사실상 멈춰선 상태다. 70주년 기념식도 열지 않기로 했다. 삼성 고위 임원은 “실추된 그룹 이미지와 임직원의 사기를 추스르고, 표류하는 경영을 정상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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