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쑥쑥 크는 일본 ‘도심 농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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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신토불이 운동이 일고 있다. 도쿄 인근 가미이시키미나미 초등학교 학생들이 전통 농산물인 고마쓰나를 재료로 만든 급식을 받아 들고 즐거워하고 있다.

일본 도쿄의 중심지 도쿄역에서 동쪽으로 10㎞가량 떨어진 에도가와(江戶川)구. 이 지역 농업경영자클럽 회장을 맡고 있는 이시가와 젠이치(石川善一·64)는 5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도시 농업인’이다. 인구 1250만 명이 살고 있는 거대 도시 도쿄의 주택가에서 3500㎡ 크기의 밭에서 채소 농사를 짓고 있다.

이시가와는 이곳에서 에도가와의 특산물 고마쓰나(小松菜)를 재배하고 있다. 시금치와 상추의 중간쯤 돼 보이는 일본 야채로 샐러드나 볶음, 국 거리로 쓰인다. 그는 18세 때부터 농업에 종사해 왔다. 연간 매출액은 1000만 엔(약 1억원)가량이다. 씨를 뿌려 놓으면 20~30일 만에 수확이 가능할 정도로 잘 자라는 작물이다. 하지만 경비를 빼면 큰 돈벌이가 되는 농사거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에도가와에는 그처럼 도시 생활을 하면서 지역 특산물을 재배하는 농업인이 수천 명에 이른다. 고마쓰나 한 종류만 해도 2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 본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마쓰나 재배를 부업으로 하고 있다. 평균 매출액은 400~500만 엔 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이시가와는 “에도시대 8대 장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 때부터 선조들이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전통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빌딩을 지어 임대를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했다. 전통 잇기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침 일본에서는 일본판 신토불이 운동인 ‘지산지쇼(地産地所)’ 바람이 불면서 전통 농산물의 명맥 잇기가 활발해지고 있다. 에도가와에서 재배되는 고마쓰나는 아이스크림은 물론 소주·맥주·우동·메밀국수 상품까지 개발돼 브랜드화되고 있다. 관내 106개 초·중학교에는 아이들을 먹거리로 가르친다는 ‘식육(食育)’교육에도 활용되고 있다. 고마쓰나를 급식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가미이시키미나미(上一色南)초등학교 세키 야스오(關康男)교장은 “아이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재배되는 채소라는 것을 알고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도가와 인근 고토(江東)구에서 ‘가메이도(龜戶)다이콘’을 재배하는 스즈키 후지이치(鈴木藤一·80)도 전통 농산물을 지키는 도시 농업인이다. 뿌리가 굵은 개량 품종에 밀려나 자취를 감춘 전통 무의 재배 기술을 유지하고 있다. 스즈키는 “종자와 비료 값을 빼면 남는 것도 없지만 누군가 전통을 이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동호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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