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됴인터뷰>취임8개월 崔秉烈서울시징-추진력 뛰어난 强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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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리산 천왕봉자락의 두메산골 출신이 오늘까지 자라온 과정을스스로 비유한다면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뉴욕의 맨해튼까지 온 격이라고 생각합니다.』 崔시장은 스스로 밝히듯 입지전적인 인물이다.「산청촌놈」이 서울시장자리까지 올랐으니 그야말로 르완다에서맨해튼에 입성한 격이다.
「진주중.부산고.서울법대졸,조선일보편집국장.이사,12대의원,청와대정무수석,문공부.공보처.노동부장관,14대의원,서울시장」.
화려한 이력서가 말해주듯 崔시장은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렸다.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글쎄요.임명권자한테 나를 왜 씁니까하고 물어볼 수도 없고…비결이라면 어떠한 경우든 공직에 헌신한다는 자세로 내 능력범위안에서 최선을 다 한것뿐입니다.옳은 일이면 눈치보지않고 소신껏했어요..』 崔시장은 스스로 제1의 가치관을 나라를 발전시켜 부국.강국.선진국으로 만드는 나라가꾸기 라고 강조한다.때문에 노사분규나 학생시위는 나라가꾸기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강경한입장을 고수해왔다.
그 대표작이 공보처장관 재직때인 90년 KBS노조사태때 서기원(徐基源)사장퇴진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노조원을 해산시키기위해경찰병력을 투입시킨 것.
『언론인 출신으로서 언론사에 경찰을 투입시키는 것이 가슴아팠지만 대통령이 임명한 사장이 노조에 의해 쫓겨나는 상황이 와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 고민끝에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 경찰투입요청의 변(辯)이다.
崔시장은 기획.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87.92년 대선때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후보가 그를 선거대책본부 기획위원장과 홍보상황실장자리에 앉힌것도 이같은 재주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는 두차례의 대선에서 盧.金후보가 대권을 거머쥐는데 1등공신 역할을 했다.그래서 전.현직대통령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있다.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서울시장자리에서 물러난다해도 金대통령 재임기간중에 한번쯤은 더 큰 벼슬을 할것 으로 보고있다. 부인 백영자(白玲子.53)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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