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융의 집단무의식 이론은 허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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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 집대성자로 유명한 카를 구스타프 융을 두고 거짓말쟁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학계의 화제가되고 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로 알려진 융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선사람은 하버드大에서 융의 학문 세계를 연구하고 있는 리처드 놀(35)박사.놀은 지난해 하버드대 출판사가 펴낸 『The Jung Cult』라는 책에서 『융이 제시하고 있는 집단무의식 이론은 그 바탕으로 삼은 연구 케이스가 융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케이스를 빌려 온 것』이라고 지적하고 나선 것.놀은 이에따라 융의 이론이 토대부터 잘못된 허구라고 주장하면서 융을 가리켜 『20세기들어 가장 영향력 있는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융이 제시하고 있는 집단무의식 이론에 따르면 비슷한 사회 현상에 처해 있는 군중들의 경우 평소에는 인식을 못하다가 특정 돌발 상황을 계기로 집단 전체가 동일한 행동 양태를 취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
이에따라 광신도들에 의한 집단 자살등 여러가지 유형의 집단 행동들이 융의 이론으로 설명돼 왔었다.
융 전문연구가로 인정받고 있는 놀이 이 책을 통해 문제삼은 부분은 융이 집단무의식 이론을 형성하는데 기초가 됐다고 밝힌 솔라 팔루스 만에 대한 병상기록.
190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진료를 담당했던 융은 자신의 환자 팔루스 만의 케이스가 무의식 이론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임상예라고 밝혔으나 놀은 조사결과 팔루스 만이 융의 환자가 아닌 그의 조수 호네트의 환자로 밝혀졌다고 지적하면서 융의 집단무의식 이론은 남의 환자를 끌어다가 붙인,근본 자체가 없는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놀은 특히 이같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美의회도서관에 소장돼있는 조수 호네트의 메모를 열람하려 했으나 융의 가족들이 이를사적인 소장물이라며 열람을 봉쇄,진실 규명을 방해하고 있다고 했다. 놀이 이처럼 주장하고 나서자 스위스에 있는 융의 가족측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소에 부쳤다.
61년 85세로 사망한 융의 가족 입장에서는 만약 그의 주된이론이 허구로 판명될 경우 이제까지 정신분석학의 대가로 추앙받던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우려가 있기 때문.
美의회도서관 역시 융의 가족측 허가 없이는 곤란하다는 입장을표명하고 있다.또 당초 놀의 저서를 출판하려 했던 프린스턴大 출판사측도 융의 가족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출판취소를 밝히고 있어 융 가족측의 입김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에대해 놀은 앞으로 학자들에 대한 연구를 하려면 『후손이 없는 사람을 골라야 할 것』이라고 냉소하면서 융 이론의 실체를계속 규명해나갈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정신분석학의 태두를 둘러싼 이론 논쟁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 다.
워싱턴=金容日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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