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 원자재 마구 사들이고, 달러 약세로 투기자금까지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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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원-달러 환율이 1000원대를 뚫자 제조업체들은 허탈한 표정이다. 수입원자재 가격이 치솟는 데다 환율까지 올라 비용부담이 눈덩이처럼 부풀고 있어서다. 유화업계의 한 관계자는 “ 원자재 가격이 경영부담의 진원지”라며 “다른 나라에선 다 떨어지는 달러 환율이 우리만 900원대에서 1000원대로 오르고 있으니 국제 경쟁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최근의 한화 약세 현상은 시름 깊은 산업계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게다가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들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의 요인은 수급 불안과 달러 약세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중국·인도 등의 경제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원자재 수요가 크게 는 것이 한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의 경우 심지어 육류 소비까지 늘면서 세계의 사료용 곡물 수요가 급증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공급은 이에 따르지 못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최근 2년 새 원유를 하루 평균 170만 배럴 감산했다. 나이지리아·중동 지역의 불안한 정치상황에 공급은 더욱 줄고 있다. 원자재 부족 현상이 일어나면서 수출국들의 자원민족주의까지 확산돼 수급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진 것은 원자재 파동의 진폭을 더 크게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달러 약세로 미국 국채 등에 대한 수익률이 낮아지면서 원자재 시장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투기세력이 가세하면서 가격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사상 최대의 풍작을 기록한 코코아 가격이 올 들어 20% 넘게 급등한 것이 단적인 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성명환 박사는 “과거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던 ‘곡물펀드’가 요즘은 일반인들도 쉽게 투자할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 등장했다”며 “이 같은 펀드 자금이 곡물시장에 몰리는 것도 값을 올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원자재와 곡물의 수입의존도는 최악의 수준이다. 한국은 세계 4대 석유수입국인데도 ‘자주개발률’이 4%밖에 안 된다. 자주개발률이란 국내외에서 확보한 원유·가스를 국내 소비량으로 나눈 비율이다. 프랑스(95%)·이탈리아(51%)·일본(15%)에 크게 못 미친다. 곡물자급률도 쌀을 제외하면 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특별취재팀 : 양선희·장정훈·이철재·손해용·한애란 기자(이상 경제부문),
도쿄=김현기 특파원

◇생산자물가지수=생산자가 만든 물품을 도매상이나 다른 기업에 판매하는 공장도 가격을 종합해 산출한 것이다. 도매상이 판매하는 가격을 토대로 작성하는 도매물가지수와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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