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홍대 앞에 새로 생긴 카페다.들어서자마자 귀가 따갑도록 음악이 시끄럽다.자리에 앉으면서 주문을 받으러 온 아가씨에게 음악을 좀 줄여달라고 했다.아가씨는 별 이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가씨가 자리로 돌아간지 한참이 됐으나 별로 음악 이 줄어드는기색은 없다.그러나 시간이 가니 차츰 시끄럽던 음악이 편안하게느껴졌다.이 카페는 좋은 스피커를 달았는 지 커다란 재즈 음악이 정감있게 스며들어왔다.한쪽을 보니 멋있게 생긴 다소 나이가지긋한 사람이 분위기를 잡고 앉아 있었다.남자지만 이상적으로 멋있고 분위기가 있어 자꾸 그리로 눈길이 갔다.머리 위를 보니투박하게 금이 간 하얀 벽돌로 이루어져 있어 자연스러움이 느껴졌고 카운터 쪽을 보니 웨스턴 풍으로 길게 막아놓은 탁자 위에바텐더와 주문받는 아가씨가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두 여자가 들어와 저 멀리 의자로 가 앉는다.그리고 얼핏 뒤가 느껴져 힐끗 보니 두 남녀가 붙어 앉아서 키스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하나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모든 게 자연스러웠다.세상이 바뀌긴 많이 바뀌었나 보다.앞에 앉아있던 한 여자가 일어나걸어갔다.눈이 번쩍 뜨였다.그녀는 문자 그대로 팔등신이었기 때문이다.얼굴도 예뻤고 그런 팔등신 미녀는 처음 보는 것 같아 자꾸 눈이 갔다.그러고 보니 그녀와 같이 온 여자도 얼굴이 가늘고 호리호리한게 미인이었다.옛날 같았으면 무척 반했을 형이다.그러나 지금은 팔등신 미녀에게로만 더 눈이 간다.나이가 들면서 섹스 어필도 바뀌나 보다.민우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7시다.여자를 만나야 할 때다.친구들은 은 근히 민우를 부러워했다.자기네들은 처자식에 얽매여 있는데 민우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처자식이 죽는 것은 스트레스 순위 첫번째인데 부러워하니 남자들이란 역시 다 도둑놈들인가 보다.그러나 사실 부러워할 만도 했다.지금 만나려는 여자도 보 기 드문 미인이니까.그러나 아무리예뻐도 이 여자는 이제 진드기 이상의 가치가 없다.여자는 민우와의 결혼을 고대하고 있었다.그러면서 민우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다고 했으나 민우가 채영과 동거를 하자 더이상 참지 못하겠다고 만나자고 한 것이다.민우는 이미 끝난 사이에 다시 만날 것이 없다고 계속 피했으나 집요하게 달라붙는 여자의 요청에 딱 더도 덜도 말고 두시간만 만나기로 했다.이 여자와는 무조건 두시간 내에 말을 끝내야 한다.두시간에서 조금도 더 끌 가치가 없 는 여자다.특히 오늘은 새로운 여자를 9시에 만나야 하니까….7시가 되자 어김없이 여자는 민우의 앞에 와서 앉았다.그리고 그녀는 친구 두 사람을 대동하고 있었다.소위 그녀의 친위대들이다. 『그래 할 말이 뭐요?』 여자가 기쁜 시선으로 민우를바라봤다.민우는 그 시선에 역겨움을 느꼈다.겉보기에는 조금도 흠이 없는 맑은 모습이나 그녀는 민우의 일생에 단 한번 만난 악연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