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表皮的 일본觀-전략적 일본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본에 있는 한국특파원들은 돌아갈 때가 되면 으레 입다무는 연습부터 한다.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언제부터…』라는 핀잔이 들어오고「국내수요」에 맞춰 얘기하자니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느낌은 전후(戰後)에 태어나 반일(反日)교육을 받고 자란 한국인이 일본체류에서 겪는 공통점중 하나다.韓日관계가얼마나 착잡한 2중관계인가는 일본에 있으면 더욱 절실히 와닿는다.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 원한을 현실속에 녹여 일본인들에게 표현하는 것이나 국내의 시각에 실망(?)을 주지 않으면서 일본쪽 실상을 전달하는 것 모두가 쉽지 않은 일이다.
입다물고 본전치기나 할 형편이 아닌 사람들에겐 우선 국내의 일본관(日本觀)이 여러 형태로 부담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그 중에도 일본의 실상과 위상을 있는만큼도 직시하지 않으면서 어느한 부분을 들어「있다」「없다」로 결론짓거나,그런 행위에 동조를요구해올 때는 곤혹스럽다.
물론 일본에도 귀책사유가 많다.아직도 지도층이 역사인식에 관한 망언을 거듭하고 있고,전쟁과 침략이 상대국에 남긴 깊은 상처보다는 그들의 원폭피해를 더 중시하는게 일본인들의 정서다.2차대전이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국제사 회의 상식이일본열도에서만은 통하지 않는다.실망을 넘어 한심하다는 생각마저든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아직도 일본에 대해 「있다」「없다」수준의 단선적 논리와 인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양국관계는 빠른 속도로 복잡해져 가고 있고,과거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 국제적으로 통용될만한 기준에 어느정도 일치하는 것인지,아니면 동떨어진 것인지 문제의식을 갖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냉전이끝난후 일본의 상황이 국내외적으로 어려워지고 있 는건 일본인들도 인정한다.그렇다고 일본에 희망이 없다든지,일본으로부터 배울게 없다,못된 것만 배웠다는 주장은 적어도 한국 외에서는 나오기 어려운「특수논리」다.일본의 약세를 틈타 미국이 국익차원의 공세를 강화하는 것은 별개의 차원이다 .
국가건설에 대한 일본국민의 협동심.질서의식.기업경영방식등은 몇건의 돌출사건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본받으려 노력하는 모델이다.아직도 일본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장점을 많이 갖고 있다.아마논리를 뛰어넘어 일본을 깔보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는건 한국인만의 특징인지 모른다.
『일본은 없다』란 책이 자라나는 세대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런 기준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것은 일본에 대한 무지(無知)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도쿄(東京)에 사는 한국사람들은많이 한다.이들의 공통된 바람은 한국의 젊은 세대 들이 일본에대한 양극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뭔가 역할을 했으면 하는 점이다.예컨대 혼용되고 있는 극일(克日)의 개념이 일본잔재의 청산,즉 脫일본보다 일본을 따라잡는 쪽에 비중을 둘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개인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국 가관계에서야말로 상대의 장점과 힘을 인정하고 자신을 향상시켜 나가는 것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길이다.
일본과 세계수준의 논쟁을 하자면 다양한 정보를 선입견없이 받아들여 세계적 기준에서 구별하는 힘을 갖는 것이 핵심과제일 것이다.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선 일본만을 거부.기피하는 것이 비논리적일 수 있다는 성숙된 토론의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토론의 테마로는 역사문제에 관한 일본정치인들의 조잡한 발언처럼 감정적 대응이 앞설 수 있는 것에서부터 우리가 잘 배우면 발전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것까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일본에 대한 비판과 분석에는 우리 스스로의 내구력 함양을앞세우는,다시 말해 길게 내다보는「전략개념」이 중요하다.
〈日本총국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