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팩시밀리 회사에 들어가 베어스턴스를 담당하는 영업사원이 되는 겁니다. 이 회사는 팩시밀리가 공짜인 양 마구마구 주문하고 있습니다.” 16년간 베어스턴스 CEO를 지낸 앨런 그린버그의 잔소리다. “오해하는 것 같은데, 페덱스는 우리 자회사가 아닙니다. 지난달 택배비용만 5만 달러입니다. 우편을 이용하세요. 우표 붙이는 법을 모르면 그린버그라는 남자에게 전화하세요.” 그는 클립 하나, 종이 한 장도 아끼라고 극성이었다. 그의 익살스러운 잔소리를 모은 책이 베스트셀러 『회장님의 메모』다. 그래도 성과급 잔치 때는 누구보다 손이 컸다. 빳빳한 현금 뭉치를 봉투에 넣어 주었다.
“상식 경영으로 이 회사는 월가에서 가장 안정된 투자은행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베어스턴스 주식에 대한 매수 추천이다. 그것도 워런 버핏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런 베어스턴스가 망했다. 1923년 설립 이후 재작년까지 83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흑자를 낸 전설적인 회사. 2001년 닷컴 붕괴 때도 한발 앞서 주식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신화를 쌓았다. 이런 베어스턴스가 망했으니 ‘대공황 정도의 위기’나 ‘종말론’ 단어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굳이 공포에 떨 일이 아니다. 베어스턴스는 미국 5위의 투자은행. 다른 분야는 고만고만한데 유독 주택저당채권(MBS)에서만 압도적 1위다. 6년 전 그린버그 회장이 떠난 이후 상식이 무시된 것이다. 주택채권에 ‘몰빵’한 게 화근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로 베어스턴스 신화는 무너졌다. ‘상식 경영’으로 성공했다가 망하면서도 ‘상식 경영’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