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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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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외교사에 길이 남을 정상회담의 상당수가 미국 대통령의 주말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뤄졌다. 2차대전 때 대독(對獨) 전선을 논의한 루스벨트-처칠 회담, 미·소 해빙 무드를 연출한 아이젠하워-흐루쇼프 회담, 중동 평화의 해법을 내놓은 카터-사다트-베긴 회담 등이 대표적 사례다. 긴장감에 휩싸이게 마련인 백악관과 달리 별장이란 공간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가 진솔한 대화로 이어져 회담 성과를 이끌어내는 촉매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별장 외교’를 가장 애용한 사람을 꼽자면 단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닐까 한다. 그는 전임자들이 활용해 온 캠프 데이비드뿐 아니라 부시 일가의 사유지인 텍사스 주의 크로퍼드 목장과 메인 주 케네벙크포트 별장까지 개방했다. 그러고는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교묘히 회담장을 달리했다. 가장 극진한 예우는 부시 대통령의 ‘안방’격인 크로퍼드 목장으로의 초대였다. 2001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상견례를 갖고 의기투합한 뒤 다음번엔 크로퍼드로 부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좋은 예다.

이명박 대통령이 4월 방미길에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대통령과 회담한다고 청와대가 공식 발표했다. 동맹국 대통령이 이제야 처음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받았다는 건 아무래도 때늦은 감이 있다.

실은 2005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도 별장 회담이 추진됐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라크 전쟁에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군대를 보낸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미국 측도 한때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청와대 몇몇 참모의 반대 의견에 부닥쳐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말조차 굳이 통역을 고집할 만큼 격식에 집착한 당시 청와대의 ‘자주파’로서는 근엄해야 할 정상외교를 별장에서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지난 정권의 한·미 관계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내친김에 캠프 데이비드에 얽힌 얘기, 한 가지 더. 지난해 4월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를 위해 부시 대통령이 주재한 오찬 테이블에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메뉴가 올라왔다.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치즈버거였다. “우리 쇠고기를 드시고 안전을 확인한 뒤 수입 규제를 풀어 달라”는 메시지였다. 그때의 일본이나 지금의 한국 모두 쇠고기 수입 문제가 대미 관계의 현안이 돼 있긴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에겐 어떤 요리가 나올까 궁금해진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