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머슴론, 속은 시원하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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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십수 년 기자로 일해온 다른 신문사 후배가 얼마 전 공무원이 됐다. 개방직에 원서를 내 뽑힌 것이다. 직업을 바꾼 그에게 재미가 어떠냐고 물었다. 별천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공무원을 오래 취재해 봤지만 그 세계가 이런 곳이었는진 미처 몰랐다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근무시간에도 한가한 때가 있어 책을 펴 들곤 한다고 했다. 그러다 “내가 지금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되나” 하며 화들짝 놀라기도 한단다. 오후 6시 퇴근시간이 되면 아랫사람들 눈치에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1박2일로 단합대회를 간다기에 어느 주말로 할까 물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도 털어놨다. 거기선 술 먹고 노는 것도 ‘공식 행사’란 타이틀을 붙이면 평일에 한다는 것이다. 주 5일 근무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업무량은 신문사와 비교할 때 절반도 안 되며 스트레스는 더욱 작다고 했다. 월급은 어떨까. 신문사보다 좀 적지만 공무원으로서 누리는 여러 가지 혜택을 감안하면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정말 잘한 선택”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같은 임금에 일과 스트레스는 훨씬 적으니까. 개인적으로 이런 직장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공공부문의 생산성 차원에서 보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이 케이스로만 단순 비교하면 공무원의 생산성은 기자의 절반 정도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강도라면 그 조직의 인원은 절반이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조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까. 방법은 두 가지다. 일을 늘리거나 사람을 줄이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일을 늘려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평일에 단합대회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조직이라면 새로운 일을 한다 해도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그렇다면 인원을 감축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를 받으며 ‘머슴론’을 꺼냈다. 그는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머슴인데 실제로 그런 역할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수많은 공무원을 접해 본 결과 머슴과는 거리가 멀더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국민을 위해 일하고, 그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 공무원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주인 덕에 월급을 받는다며 고마워하는 이는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럴까. 주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주인이 확실한 민간기업에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이 공공부문에서 일어나는 건 주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너무 많은 건 없는 것과 같다. 모든 국민이 주인인데 어느 한 사람이 나서 “내가 당신의 주인이요”라고 소리쳐 봤자 그쪽에선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가만있는데 왜 당신만 설치느냐’ ‘당신은 뭐 그리 잘났느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민간에서 공직으로 자리를 옮긴 다른 지인의 얘기도 있다. 그는 처음에 목소리를 높이다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걸 몇 번 경험한 뒤엔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털어놨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데 왜 당신만 이리 시끄러우냐”는 눈총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기가 내 새 직장인데 이렇게 분위기 파악을 못 하다간 곤란하겠다 싶어 곧 타협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머슴은 주인보다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게 머슴의 도리”라고 말했다. 신문에서 이 기사를 읽은 아내는 “말만 들어도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마시라. 냉정하게 말해 머슴론은 공무원들에게 정신 재무장을 닦달해서는 풀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편하게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고, 공무원들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더 그렇기 때문이다. 나도 공무원이 된다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답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공공부문은 조직생리상 원래 생산성을 높이기 어려운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규모를 줄이는 게 답이다. 공무원들에게 사명감을 요구하기보다는 조직과 인원을 줄이는 게 생산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공기업 민영화도 그런 점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심상복 경제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