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1954~) '멍게' 부분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게는 참 조용하다
천둥벼락 같았다는 유마의 침묵도
저렇게 고요했을 것이다
허물덩어리인 나를 흉보지 않고
내 인생에 대해 충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멍게는 얼마나 배려깊은 존재인가
(중략)
멍!
소리를 내면 벌써 입안이 울림의 공간
메아리치는 텅빈 골짜기
범종 소리가 난다
멍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성가족 대성당 사진을 본다. 1883년 지어지기 시작한 이 성당은 현재도 완공을 향해 진행 중이다. 뾰족한 첨탑들만 제외하면 성당의 모습은 얼핏 멍게의 모습을 닮아 있다. 신성한 성당과 멍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멍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한없이 못 생기고 어수룩한 그 공간 어딘가에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신이 머무르고 있을 것만 같다. 멍! 범종 소리처럼 울리는 멍게. 허물덩어리인 우리의 인생을 침묵으로 감싸 안아주는 멍게!
곽재구<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