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시동 건 ‘와인 산업화’ 희망을 맛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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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품평회를 마친 농민들이 직접 만든 포도주를 마셔 보며 품질 좋은 포도주를 만들 것을 다짐하고 있다. [영천시 농업기술센터 제공]

12일 오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시안미술관 2층 카페에서는 이색적인 포도주 품평회가 열렸다. 영천의 포도 재배 농민이 직접 만든 포도주를 평가하는 자리다.

와인 전문가 7명이 무대 앞쪽을 차지하고 탁자에는 번호가 붙은 붉은색 포장지로 싼 포도주 15병이 놓였다. 탁자에는 많은 포도주 잔과 물·빵 등이 놓여 있다. 전문가들이 병 뚜껑을 열어 차례로 향기를 맡고 입안에 굴리며 맛을 보기 시작했다. 색깔도 유심히 관찰했다. 다음 포도주를 평가할 때는 물·빵으로 입·혀를 씻거나 닦아냈다.

이날 평가 대상이 된 포도주는 농민이 만든 10병과 국내에서 애용되는 칠레·호주·프랑스 등 5개국의 중저가(1만~2만원) 포도주 5병이다.

평가 결과 조성현(52·금호읍 오계리)씨 포도주가 1위를 했다. 이어 2위는 호주산, 3·4위는 이영화(41·금호읍 원제리)·김정화(51·원제리)씨가 차지했다. 농민들의 포도주가 외국산 못지 않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조씨는 “직접 포도주 양조장을 두고 품질 좋은 포도주를 생산·판매하고 싶어 와인 제조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1만3000㎡에서 30년간 포도농사를 지어 온 그는 “이제는 영천 포도의 부가가치를 높일 때”라고 와인 제조법을 배운 배경을 설명했다.

18년간 포도 농사를 지은 이씨도 “한국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 판매해 보고 싶다”고 의지를 보였다.

평가위원으로 활동한 박희동(경북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단시간에 좋은 와인을 생산해 희망이 있음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대구대 김민 생명환경대학장은 “숙성이 덜 됐지만 수입 와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포도주를 출품한 10명 등 농민 14명은 지난해 11월부터 이달말까지 예정으로 매주 2시간 이상 ㈜한국와인(영천시 금호읍 원기리)에서 와인 제조법을 배운다. 포도를 고르는 법에서부터 숙성법, 당도 맞추는 법 등을 전수받고 있는 것이다.

교육 중 탄닌 함량과 당도·산도의 균형을 맞추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탄닌·당도·산도의 균형이 잘 맞아야 우수한 포도주로 평가받을 수 있어서다. 농민들은 이달 초 담근 포도주를 병에 넣고 일주일 정도 숙성해 품평회에 내놓았다.

와인제조법 교육은 영천시가 농가형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 운영을 확대하기 위해 실시됐다. 시는 품평회 결과를 보완해 앞으로 농가의 포도주 생산과 상품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농가형 와이너리’가 일반화한 프랑스를 벤치마킹, 와인을 산업화하려는 것이다.

◇와인의 산업화=영천시는 올해부터 3년간 정부지원금 등 총 65억원을 와인 산업화에 투자한다. 농업기술센터에 2층짜리 와인학교를 지어 농가에 와인 제조법 등을 가르치고 와인연구소를 설립해 양조기술연구와 와인용 포도 품종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2% 수준인 포도 가공율을 10%로 끌어올려 포도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영천에서는 5500농가가 2152㏊에서 연간 3만7000t의 포도를 생산하지만 98%가 생포도로 유통돼 가공율 확대가 과제였다.

농업기술센터 이중종(50) 과장은 “와인 숙성을 위한 토굴 조성, 와인 브랜드 개발, 와인·포도 전시관 건립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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