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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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얼마나 되는데요?』 거지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지금 가진 것 모두 내놔야하고 나로 인해 생명을 구하게 되면 십일조를 바쳐야 하지.나는 그네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 신과 같은 존재니까.그리고 자살하든 않든 나와 키스를 해야돼.그건 계약금이지.물론 예쁜 여자에 한해서지만 ….』 『키스요? 하,그 더러운 입에 키스를 해요? 오늘 이빨이나 닦았어요?』 희경은 갑자기 그에게 친숙함이 느껴져 되는대로 말했다.그는 작고 꾀죄죄하고 추하고 늙어 보였지만 눈만은 개구쟁이처럼 맑고 반짝거렸다.
그리고 그의 말투도 어느새 반말로 바뀌어 있었다.그 또한 희경에게 친근감을 느꼈는지….
『전에는 섹스를 했지.그러나 이제는 체력이 달려서 키스로 만족하는 거야.』 『자살하려는 여자와 섹스를 해요?』 희경은 눈이 똥그래져 말했다.
아무리 저 세상으로 갈 몸이라지만 이렇게 지저분한 사람과 섹스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이지.젊었을 때는 몸만 받고 상담료는 안받았는데 나이가들다보니 여자 몸이란 게 별거 아니더라구…그래서 키스로만 만족하고 돈을 받지.역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이 최고라니까.』 『여자들이 고분고분 몸을 줘요?』 희경이 궁금해 물었다.
어느 여자가 이런 더러운 거지에게 몸을 맡길까? 아무리 죽을몸이라지만….
『왜 당신 같으면 안줄거야?』 『물론이죠.당신 같이 지저분한사람하고 섹스를 할 바에야 칵 죽어버리는 게 낫겠어요.』 『그러니까 주지.「기왕 죽을 거,딱 한번만」이란 말도 있잖아.
그리고 개중에는 끝까지 몸을 안주겠다고 버티는 여자도 있는데그때는 내가 강간을 하고 죽이지.죽인 다음에 강간을 하든가….
』 『강간,살인까지 해요?』 희경이 기겁을 하고 물었다.
『살인은 아니고 기왕 갈 거 조금 더 도와줄 뿐이지.그건 그렇고 당신 얘기나 좀 해요.이거 마치 상담자와 내담자(client)가 바뀐 것 같네.』 임희경은 거지 때문에 잠시 자기의 처지를 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자신으로 돌아오니 우울해졌다.
이때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희경을 흔들었다.희경은 자기도 모르게 거지를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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