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영화주제를 가린 "누드 가리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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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나라의 성인은 여배우의 누드를 감상할 지적.정신적 수준이 안되는가?』 미성년자 관람불가로 상영중인 영화『패션쇼』(원제 Pret-a-porter)를 보고 생긴 의문이다.
이 영화는 파리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 최대 기성복 패션쇼의 진행상황을 소재로 라이벌간의 암투와 자존심,패션계에 유행하는 동성애와 성격 파탄,사랑과 로맨스 등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엮어내고 있다.
파리 패션계의 풍속화에 해당하는 이 영화에서 문제되는 것은 마지막 5분간의 누드 패션쇼를 가려버린 검열의 문제점이다.
프레타 포르테 마지막 날 디자이너 시몬 로의 패션쇼.
태고의 동굴에서 들려오는 듯,클렌베리의 노래 『Pretty』가 무대에 퍼지면서 모델들이 전라(全裸)로 한명씩 등장한다.
느린 동작으로 우아하게 걷는 모델들의 누드가 정면에서 보이는가운데「You are so pretty the way you are」(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아름답다)는 가사가 울려퍼진다.
어리둥절해 하던 관객은 그녀의 주제의식에 공감하며 기립박수로환호한다 「각종의 기발하고 화려한 의상을 걸쳤을 때 보다 그 누드가 훨씬 아름답지 않은가,패션쇼는 관계자들의 경쟁심과 돈벌이의 장으로 변질된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그 주제의식일 터이다. 이 장면은 그러나 난데없는 하트 모양의 가리개가 허공에 등장해 모델들의 치모 부위를 가리고 있다.
『누드가 아름답다』는 주제를 정면으로 부인하고『누드는 외설이며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란 문화체육부와 공연윤리위원회의 주제를 전달하는 셈이다.이 가리개는 주제를 훼손하고 영화를 훼손하고 관객의 볼 권리를 훼손한 것은 아닐까.
수입업자는 아예 하트 가리개를 만들어 넣어 심의를 신청했고 공륜의 영화 심의위원들은 멀리 원경에 비치는 모델중 일부가 제대로 가려지지 않았다며 또다시 가위질을 했다.
공연법은 성기노출을 금하고 공연윤리위원회 심의규정은 치모노출을 금한다는 게 그 이유다.
일본 영화윤리관리위원회는 20여년간 유지됐던「치모노출 금지」조항을 지난 92년「원칙적으로 금지한다」로 바꿔 사실상 외설기준을 완화했다.
이제는 우리도 성인의 볼 권리를 현실화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그 누드장면이 설사 외설로 보였다 할지라도.
趙顯旭〈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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