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장롱을 발칵 뒤집고, 가구를 휴대폰처럼 패션화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1979년 3월 중순. 스물다섯 살 총각 사장인 목화가구 김경수 대표는 며칠째 가구 판매점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렸다. 가구 제조사 직원 출신인 김 사장이 직원 7명을 데리고 세운 회사에서 ‘첫 작품’을 시장에 내놓고 나서다. 그가 출시한 장롱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다. 아래쪽엔 서랍장 세 개를 배치하고 위쪽엔 마치 책장을 넓힌 형태로 공간을 만들어 옷장 또는 이불장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든 것. 요즘엔 이런 유형의 장롱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딱 두 가지 유형뿐이었다. 탱크처럼 육중한 자개장 아니면, 지퍼로 여닫는 이동식 천옷장이다. 당연히 다른 스타일의 장롱은 생각도 못한 시절이었다. 처음엔 판매상들로부터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이런 걸 장롱이라고 내놨느냐’는 핀잔도 적잖게 들었다.

올해 54세인 그는 “첫 작품 개봉 뒤 잠 못 이루며 관객 반응을 지켜보는 새내기 영화감독의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다행히 결과는 대성공. 가볍고 실용적인 데다 가격도 자개장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제품은 날개돋친 듯 팔렸다. 출시된 지 반년이 지날 무렵엔 밤낮없이 공장을 돌려 하루에 30세트를 출고하기도 했다. 영화로 치면 첫 작품이 ‘블록버스터’(대흥행작) 반열에 오른 셈이다. 그는 “그 시절엔 집집마다 이사가 매우 잦았다”며 “이런 상황을 간파해 옮기기 편하고 저렴한 장롱을 찾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읽었기 때문에 출시 전부터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다른 가구사들이 앞다퉈 비슷한 스타일의 장롱을 쏟아내면서 그는 ‘주니어 가구시장 개척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상승세를 탄 그는 95년 회사 이름을 ‘에몬스가구’로 바꾸고 해마다 신제품을 선보였다. 새 회사명은 ‘감성(Emotional)’과 ‘스타일(Style)’이라는 영어 단어를 조합한 것이다.

그의 첫 번째 고비는 97년 외환위기. 하지만 2003년 두 번째 고비가 더 아팠다. 야심차게 내놓은 제품마다 소비자 반응이 신통치 않아 처음으로 성장이 제자리걸음을 한 것. 그는 “위기에서 구출해준 것은 역시 철저한 고객 분석과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에몬스는 이후 고강도 경비 절감에 나서고 ‘고객 밀착’ 경영의 고삐를 바짝 잡아당겼다. 해마다 두 차례 전국 가구 판매점 관계자 200여 명을 본사로 초청해 시제품 품평회를 열고 즉석 설문을 통해 제품의 보완점을 챙기는 것은 에몬스만의 차별화 전략 중 하나다. 출시 전에 고객과의 접점인 판매상들의 냉정한 판정을 거친, 완벽한 제품을 내놓자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전략이다. 디자인 조직도 강화했다. 7∼8명에 불과했던 디자인팀 소속 인력을 꾸준히 늘려 이제는 업계에서 가장 많은 수준인 12명의 가구 디자이너들이 일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고스란히 ‘경영 호조 성적표’로 돌아왔다. 2005년 이래 해마다 연 30%가량 매출이 급성장했다. 10년 연속 한국산업디자인상을 받는 기록도 세웠다. 그는 “가구 디자인은 3∼6개월마다 트렌드가 바뀌어 유행에 가장 민감하다는 휴대전화 못지않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 인력을 보강하고 올해 안에 ‘가구디자인연구소’을 세우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라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올해 새로운 도전장을 내민다. 가구와 아파트용 특판 가구에 이어 사무용 가구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계획이다.

표재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