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서머타임制 실시해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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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장승우(張丞)재정경제원 제1차관보는 지난 6일 『최근 일부 업종에서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인력수급 대책을 마련중』이라고 했다.이와함께 재경원은 4월1일부터10월31일까지 7개월간 시계바늘을 한시간 뒤로 늦춤으로써 일상생활을 한시간 빨리 시작하는 서머타임제(일광절약제)를 내년부터 실시하는 방안에 대해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처에 검토요청했다.
아직 과기처의 검토의견과 정부의 공식입장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87,88년에 시행되다 폐지된 이 제도의 부활가능성을 놓고벌써부터 찬반논의가 뜨겁다.서머타임제에 대한 판단근거를 독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관계자간의 논쟁을 싣는다.
[편집자註] 서머타임제도는 우리 생활의 質향상을 위해 많은 장점이 있다고 본다.
해가 긴 여름의 낮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창조적이고 건강한 부분에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 서머타임제 즉,일광절약제(daylight saving time)의 취지다.
이 제도에는 다음과 같은 좋은 점들이 있다.
첫째,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자기계발에 서머타임제가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여유시간이 출퇴근 전후로 분산돼 있는데 서머타임이 실시될 경우 조기출.퇴근을 함으로써 퇴근후의 시간이 많아져 외국어학습등 자기계발을 할 수 있게 된다.
둘째,일찍 퇴근함으로써 부부간.자녀들과의 대화도 많아져 청소년문제와 가정생활의 질도 높아질 것이다.
셋째,퇴근시간이 현재보다 분산됨으로써 퇴근길 교통난도 훨씬 나아질 것으로 본다.지금은 지친 근로자들의 퇴근시간이 분산되지않고 있어 퇴근교통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선진국들도 서머타임을 많이 실시하고 있는데 G-7 국가중 일본을 제외한 미국.프랑스.독일.캐나다.이탈리아 모두가 서머타임제를 도입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88년 서머타임 실시경험을 보면 외국어학원과 수영장.테니스장등이 장사가 잘된 반면,유흥업소의 매출액이 3분의 1가량 줄었다고 한다.
물론 서머타임제 실시의 부작용으로 근무시간이 길어질 것이라는우려도 있다.
최근 근로자의 지위가 향상돼 추가 근무시간 연장이 없으리라 보지만 이 추가적 부담해소에 대한 실시당국의 의지가 분명하게 천명되고 실행돼야 할 것은 물론이다.
우리가 선진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관리다.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예외없이 동일하게 주어진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하겠다.서머타임제는 바로 시간관리에서의 발상의 전환을 의미한 다.

<송대희 한국개발硏부원장> 서머타임제도가 처음 실시되었을 때 술집은 울상을 짓고 레저업종은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많은 국민들이 처음에는 적응이 안돼불편을 겪었다.그러나 낮이 긴 계절에 한 시간 일찍 퇴근하면 유흥업이 상대적으로 위축돼 소비가 억제되고 생산 부문으로 일손이 돌아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많은 근로자들은 사실상 근로시간만 연장시키는 제도라며반대했다.시계를 한시간 앞당겨 놓음으로써 그만큼 활동을 일찍 시작하고 그래서 남은 시간을 딴일에 할용하자는 것인데 근로자 입장에서는 이같은 취지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상전 눈치도 봐야 겠고,밖은 대낮 같이 환한데 일찍 퇴근한다는게 어쩐지 민망스러웠던 게다.87,88년 당시 우리의 사회 분위기는 이러한 정서가 깔려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이는 누가 시켜서가아니다.그러는 쪽이 훨씬 맘이 편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우리의 의식은 놀랄 정도로 많은 변화를가져왔다.변화된 우리의 의식이 모두가 긍정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직장 상사 눈치 봐가며 일하는 근로자는 요사이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그사이 우리의 사회적 정서는이렇게 바뀐 것이다.
서머타임으로 한시간을 앞당기면 퇴근도 한시간 앞당겨지니 그만큼 오후에 자기시간이 실제로 많아진다.하루는 24시간임에 어김이 없지만 그 활용하는 한시간이 「밤시간」이냐,「낮시간」이냐의차이는 엄청나다.결론은 찬반을 논하기에 앞서 개 개인이 주어진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된다고 본다. <이종학 서울정공사장> 정부가 신종「60분 일 더하기운동」의 우려가 있는 서머타임제를 실시하겠다고 나서는 것 같다.
이 제도는 2백여년전 벤저민 프랭클린의 양초절약 아이디어로 출발,1차대전중 각국 국민들의 노동력동원 강화를 위해 처음으로도입돼 선진 각국은 지난 73년 석유파동이후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웃 일본도 97년부터 실시하게 된다.일본은 환경보존과 국민의 건전한 여가활용 촉진이라는 사회 복지적 배려가 보이는데 우리와는 기본발상부터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의 서머타임제는 결국「노동자 일 더 시키기」로 귀결될 것이다.
서머타임의 효과나 성공여부는 여타 제도와 관행,그리고 국민의의식에 따라 다르고 졸속으로 시행하는데 따르는 문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관건은 조기 퇴근의 보장인데 우리 사회의 관행이나 장시간 노동의 실태를 볼 때 사실상 실현되기 어렵다.대부분사업장에서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는 풍조가 유행할 것이다.
오히려 유연시간제(플렉시블 타임제)를 확충하는 편이 낫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여기다 「변형근무제」등이 함께 실시된다면 근로자들에겐 최악의상황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단순히 퇴근시간이 빨라지면 유흥업소가 줄어들고 유휴인력이 산업현장으로 유입될 것이라는생각은 지극히 탁상공론적 발상이다.
국민 모두가 일상적인 생활리듬을 깨뜨리면서 강요에 의해 시행되는 한시간의 조기 근무가 과연 산업현장에서 얼마나 생산능률을높일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철저한 영향평가와 광범위한 여론수렴 작업이 있어야 한다.일본도 서머타임제를 실시키로 했으나 시행시기는 2년후로 미루었다.
도입 시기를 시계바늘 앞당기듯 서둘러서는 안된다.
지금도 아침 7시에 출근하는 기업이 많은데 그들에게는 서머타임이 고통이다.

<이정식 한국노총조사부장> 서머타임제도는 계절에 따라 일광시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북유럽에서 여름철의 일광 절약을 목적으로 실시돼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1년중 6개월간 서머타임을 적용하고 있는 영국은 그래서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고,실제로 3년의 유학 생활 동안 서머타임제의 효과를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위도가 엇비슷하거나 낮은 나라에서는 서머타임제를 거의 실시하지 않고 있다.사람의 생체리듬을 인위적인 시간으로 규제해야 할 정도로 계절간 일광시간의 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제도의 실시 를 통해 산업인력이 유흥.서비스업종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낮 시간대의여가활동으로 건전한 생활풍토를 조성해 과소비를 억제하고 에너지도 절약하는등 여러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위해서 는 근로자의 법정 근로시간이 엄격하게 준수되는 근로문화가 전제돼야 한다.
상사가 퇴근할 때까지,혹은 해지는 시간까지 일하는 것이 관행화돼 있는 우리나라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서머타임제가 실질적인 근로시간의 연장이라는 새로운 부담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서머타임제는 전국민의 자연스런 생활리듬을 깨는 결과 만 나타날 것이다.또 이 제도를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산업인력 부족문제를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면 이는 더욱 용납될 수 없다. 88올림픽때 해외 중계방송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정부가 서머타임제를 강제적으로 2년간 실시하다 중단한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진영 성공회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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