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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혈액관리 불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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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순수하게 헌혈된 혈액으로 수혈한 이들이 그 무서운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에 감염된 경우가 2003년에 2명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지금까지 확인된 경우만도 13건이나 돼 수혈에 대한 엄청난 공포를 가져오며 커다란 사회문제로까지 발전할 태세다. 최근엔 거기에 더해 이렇게 허술하게 검사된 혈액을 병원에서 수혈한 환자 9명이 간염에 걸린 것으로 확인돼 국민을 더욱 불안케 하고 있다.

내용인 즉, 2000년 4월부터 2003년 5월까지 수혈용으로 의료기관에 공급된 혈액 1622만건 중 혈액판정 오류가 의심되는 2550건을 분류해 수혈자 감염 여부를 추적 조사한 결과다. B형간염 4명, C형간염 5명 등 9명이 간염 양성으로 확인된 것이다.

2000년 4월 혈액관리법 개정에 따라 혈액검사에서 각종 전염성 질병에 양성반응을 보인 경력자는 헌혈 자체를 못하도록 금지한 바 있다. 그런데 양성반응 경력자를 추후 가려낼 수 있는 혈액정보관리시스템(BIMS)이 2003년 5월부터 가동된 관계로 수혈용으로 사용돼선 안 될 양성반응 경력자의 혈액이 공급된 결과라는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설명이다.

현재 우리 정부조직 내에는 혈액사업을 전담하는 부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혈액사업은 정부가 혈액관리법에 근거해 1981년부터 대한적십자사에 업무를 모두 맡겨두고 있는 것이다. 담당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관리.감독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다른 업무까지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공공보건관리과의 사무관 1명, 주사 1명이 우리 정부 국민 혈액관리 공무원의 전부다.

일본의 경우 혈액사업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역할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매우 크다. 후생노동성에는 혈액대책과가 별도로 설치돼 혈액사업에 관한 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우리와는 아주 다르게 몇 곱절의 많은 전문인력이 포진한 일본적십자사의 과학적인 검사와 채혈을 통해 수혈 이전의 안전을 끝없이 확보해 가고 있다. 또한 헌혈등록제를 통해 혈액의 안전성을 추구함과 동시에 수급불균형을 해소해 나가려 하고 있다. 채혈 전의 문진단계부터-우리는 고작 20명의 의사지만-무려 135명의 전문의로 하여금 하나하나 불필요한 혈액을 걸러낸다.

혈액사업 분야의 새로운 도약과 질적 향상을 위해 2002년 4월 1일 대한적십자사는 자체 인원의 절반인 1500여명으로 확대 개편된 혈액사업본부 소속의 전국 16개 혈액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혈액 채취와 공급 관리가 이산가족.재해구호 법인체인 대한적십자사의 크나큰 업무가 되고 있어 국가 혈액사업 분야는 무척이나 힘겨워 보인다.

혈액관리가 무너지면 전염병 방지 체제를 유지할 수 없어 국민건강을 공공의료로 울타리 치며 지켜줄 수 없다. 정부가 주축이 된 가칭 '국가 혈액원'을 만들어야 된다는 연구결과도 이미 나와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내팽개친 혈액사업을 이젠 정부가 올바르게 맡아 챙기며, 국민이 원하는 책임을 다하는 믿음을 주는 정부를 국민은 이 시점에서 간절히 바라고 있다.

박용달 대학강사.행정학

*** 바로잡습니다

3월 8일자 29면 '국가 혈액관리 불안하다' 제목의 기고 중 필자 박용달씨의 직업 '대학강사'가 '대22학강사'로 잘못 인쇄됐습니다. 필자에게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