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청와대 공사 내가 했는데 … 문제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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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부(權府)의 상징인 청와대 본관에 리노베이션의 바람이 밀려들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공사는 (현대건설 회장 시절) 내가 했는데, 지금 들어와 보니 기능 면에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대통령과 비서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높고 웅장하지만 대통령 1인을 위한 활동 공간으로 설계돼 공간 효율성이 떨어지고, 권위주의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는 얘기다. 비서 사무실을 청와대 본관이나 본관 가까이 두고 대통령이 불쑥 들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거나 현장 지시를 내리고 싶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그야말로 팽팽 돌아가게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의 청와대는 하루가 길다. 450여 명 직원들은 대부분 아침 7시면 제자리에 앉는다. 매일 8시의 수석비서관회의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일요일도 예외가 없다. 종교 활동을 위해 9시로 회의시간을 한 시간 늦췄을 뿐이다. 토요일엔 쉰다지만 ‘노 홀리데이’를 눈치로 짐작하는 방이 여럿이다.

당초엔 하루가 좀 더 일찍 열렸다. 노무현 청와대보다 한 시간 빠른 7시30분에 수석비서관회의가 소집됐다. 새벽밥을 먹어야 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힘들다’는 한숨이 나오자 그나마 30분 늦췄다. 구내식당의 배식시간은 아침 7시와 저녁 7시30분으로 30분씩 앞당기고 늦어졌다. 밤 10시 전에 퇴근하는 간 큰 직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9시10분 청와대를 떠나는 마지막 통근 버스엔 빈자리가 수두룩하다.

근무시간에 꾸벅거리며 졸 수도 없다. 취임식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여민관(비서동)을 찾은 이 대통령은 어른 키 높이의 사무실 파티션(칸막이 벽)을 보며 “분위기가 답답하다”고 말했다. 곧이어 “잠을 자도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파티션을 없애자”는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곧장 내부공사가 시작된 여민관은 문만 열면 모든 사람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는 기업형 사무실로 바뀐다. 비서관의 방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수석비서관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유리방에서 일한다. 가슴 높이까지 반투명 유리를 쓰는 게 차관급 수석비서관에 대한 유일한 예우다.

퇴근한다고 해방은 아니다. 조만간 직원들에겐 신분 확인을 위한 청와대 출입증이 배포된다. 새 출입증엔 GPS를 이용한 위치확인 장치(전자 칩)가 내장될 것으로 보인다. 출퇴근 시간이 자동 체크되는 것은 물론이다. 반경 5m 이내 위치가 확인된다고 하니 어쩌면 출입증을 청와대 정문 초소나 집에 모셔둔 뒤 ‘술집’으로 향하는 사태가 생길지도 모른다.

최상연 청와대 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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