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황세희의몸&마음] 농담의 정신분석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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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박완서 선생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에 등장하는 농담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들어서 즐거운 이야기’에 해당한다.

새 정부의 각료나 청와대 요직에 내정된 인사들이 자신들에게 제기된 부동산 투기, 탈세, 논문 표절, 병역 특혜, 이중 국적 등의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은 한 편의 코미디물을 보는 느낌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그들의 반박을 듣다 보면 혹시나 그들도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처럼 국민에게 죄송한 심정을 ‘농담’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해서’” 가격이 급등한 절대농지를 구입했다거나, “검사 결과 암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 남편으로부터 오피스텔을 ‘선물’ 받았다”는 등의 해명이 나오던 날, 병원 기자실에 함께 있던 동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크게, 그리고 실컷 웃었다.

사회 경험도 다양하고 배운 것도 많은 출중한 사람들이라는데, 농담이 아니고서야 전 국민을 대상으로 며칠도 못 가 곧 밝혀질 거짓말을 그토록 태연하게 하진 않았을 테니까.

물론 조사와 해명 과정에서 밝혀진 내용 중엔 농담 같은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본인은 군 복무 중 대학을 졸업하고 아들은 병역 의무를 특례로 이행하면서 244일간 해외에 체류했다는 사연은 설사 법이 허용한 일이라 할지라도 귀한 청년기를 사병으로 복무한 남성, 금쪽같은 아들을 사병으로 입대시킨 부모에게 괴리감과 불쾌감을 준다.

또 2억원, 1억원짜리 골프 회원권을 두 개나 보유했다는 지적에 “사실은 싸구려 회원권”이라는 주장 또한 싸구려(?) 집 한 채도 없는 무주택자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든다.

미래가 근심스러워지는 해명도 적지 않다. 특히 재산이나 세금 납부, 경력 기재 등을 불성실하게 한 점이 들통날 때마다 ‘착오’로 누락했다는 식의 변명을 들을 때면 개인적인 서류 제출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과연 국가 대사를 관장할 능력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게 아니라 의도적인 속임수였다면 국민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자질조차 못 갖춘 사람을 국가의 재상으로 받아들이길 강요받는 셈이다.

한 주 내내 후보들의 이런저런 괴변을 접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불안하다. 과연 이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올랐을 때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하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

해명 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정신·심리 상태도 걱정거리다. 우선 수많은 국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백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반응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정신의학적으로 무감동(apathy)에 해당하는데 감정이 둔하고 감수성이 떨어진 이 증상은 우울증·정신분열증 등을 앓을 때 흔히 나타난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보여주는 막무가내식 부정이나 억지성 변명 역시 기억 장애·인격 장애가 의심되는 태도다.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는 인물들이 한반도의 새로운 신화를 쓰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농담 같은 변명 대신 새 시대의 산뜻한 시작을 위해 반성이 깃든 양심적 용단이 필요한 때다.

황세희 기자·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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