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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신체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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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6년 9월 취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초반 기세가 등등했다. 납북자 문제에서 보여준 추진력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국민적 인기에다 전후 최연소 총리 취임이란 명예가 겹쳤으니 그럴 만도 했다. 탄탄해 보이던 아베의 집권 기반에 처음 균열이 생긴 것은 불과 취임 2개월여 만이었다. 각료는 아니지만 세무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세제조사회장 혼마 마사아키가 내연의 여성과 동거 중이란 사실이 주간지에 보도됐다. 문제는 그 장소가 국가공무원 관사였다는 점이었다. 오사카대 교수인 그가 도쿄의 관사에 입주하면서 단골집 접대부였던 내연 여성까지 불러들인 것이다. “정부 관사는 모두 매각해야 한다”던 혼마가 관사에서 밀회를 즐긴 사실에 성난 여론은 그를 취임 45일 만에 현직에서 쫓아냈다.

지나고 보면 이는 서곡에 불과했다. 현직 각료들의 스캔들이 줄줄이 터졌다. 불투명한 정치자금 회계 처리가 드러난 행정개혁상이 사임하더니 급기야 의원회관 운영비를 부풀려 타낸 농수산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처구니없게도 후임 농수산상 역시 전임자와 비슷한 문제가 발각돼 두어 달밖에 못 버텼다. 방위상은 “미군의 원폭 투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실언으로 여론에 불을 지르고 장렬히 물러났다. 아베 정권은 이처럼 만신창이가 된 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고, 결국 총리직 사퇴로 막을 내렸다.

아베의 전임자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고이즈미는 5년5개월 동안 재임한 전후 일본의 세 번째 장수 총리였지만 일곱 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조·개각에서 스캔들로 도중하차한 각료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비결은 철저한 사전 검증에 있었다. 이성관계와 금전문제 등 각료 후보자들의 신변을 조사해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검증 절차를 일본 정계에서는 ‘신체검사’라 부른다. 하마평에 오르던 인사가 각료 명단에서 빠지면 “아, 신체검사에서 탈락했군”이란 식이다. 신체검사의 책임자는 35년 동안 수족처럼 고이즈미를 모신 비서관 이지마 이사오였다.

이명박 정부의 장관 후보자 3명이 이런저런 스캔들로 낙마했다. 그 때문에 새 정부의 첫 국무회의에 전임 정권 장관들까지 참석시켜야 하는 이른바 ‘임대 내각’의 모양새가 볼썽사납다. ‘신체검사’에 조금만 더 공을 들였더라면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10년 진보 정권에 보수 진영의 인재 풀이 사라졌다”는 변명을 누가 곧이듣겠는가.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