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할인점 쇼핑의 손익계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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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그랜드백화점이 서울화곡동에 선보인 창고형 할인점 그랜드마트의매장은 개점일인 지난 2일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층마다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이 몸을 부닥치며 아우성을 쳤고,줄이 길게 늘어선 계산대를 빠져나오는데는 족히 두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최근 가격파괴.가격창조.노마진 세일.마이너스마진 세일 등 유통업체들의 구호가 갈수록 현란해지고 그 구호 아래 벌떼같이 몰리는 주부들을 보면 과연 현명한 소비생활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이들 유통업체는 마치 물건 을 거저 줄것처럼 광고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백화점들이 지난달 봄정기 바겐세일에 참 잘도 써먹었던 노마진 세일이라는 것만해도 그렇다.언뜻 들으면 물건을 원가나 원가이하에 판다는 것같지만 실제로는 「노 수수료 세일」정도로 표현해야 정확하다.백화점들이 행사참여 업체 들로부터 매장 수수료를 안받았다는 뜻으로 이 단어를 쓰고 있을 뿐 참여업체 자신이 이문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마트.프라이스 클럽,그리고 최근의 그랜드마트까지 속속 생겨나고 있는 신업태 할인점들이 받는 물건값이 획기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 매장이 물건을 얼마나 싸게 파느냐 하는 것과는 별개로「합리적 소비생활」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과연 주부들이 얼마나 큰 이득을 얻는지 의심스럽다.
그랜드마트에서 계산을 기다리며 지루하게 늘어서 있던 주부들의장바구니에는 치약.냉동피자.쇠고기 등 생필품과 양말.스타킹.장난감 등 소소한 품목이 대부분이었다.교통비를 들이고,몇시간씩 더 투자하고,충동구매의 리스크를 안고,아이까지 울리면서 과연 얼마를 절약할 수 있을까.국내 유통환경은 급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보지도 듣지도 못한 신업태 할인점들이 속속 생겨나는가하면 백화점들은 노마진이란 궁여지책까지 세우며 필사의 판촉전을편다.이럴 때일수록 주부들을 포 함한 소비자들의 뚜렷한 소비관이 필요하다.절약이란 단순히 물건을 권장소비자가 보다 얼마나 싸게 샀느냐의 문제도 아니고 파격적으로 싼 제품을 얼마나 많이손에 넣었느냐의 문제도 아니다.꼭 필요한 것만을 가장 효율적으로 구입하는 것,그 것이 절약의 요체다.
李 京 宣〈유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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