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英 해리 왕자가 던진 두 가지 메시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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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02면

“영웅 해리 왕자 돌아오다”

(영국 일간지 Sun의 1일자 톱기사)

얼마 전까지 영국 해리 왕자는 ‘파티 왕자(Party Prince)’로 불렸습니다. 고급 나이트클럽에서 광란의 폭음을 일삼은 말썽꾸러기였죠. 그가 갑자기 ‘영웅, 전사(Warrior Prince)’가 됐습니다. 비밀리에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근무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죠.

두 가지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해리 왕자가 진짜로,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서, 다른 군인들과 똑같이 근무했다는 점입니다. 최고의 ‘노블레스(noblesse)’가 보여 준 철저한 ‘오블리주(oblige)’입니다.

영국 왕(여왕)은 군 통수권을 갖고 있기에 왕자들은 꼭 복무를 하고, 왕자 중 최소한 한 명은 현역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2001년 앤드루(해리의 숙부)의 전역 이후 끊어졌던 전통을 이은 사람이 천덕꾸러기 해리였습니다. 대학 대신 사관학교로 졸업한 해리는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참전하지 못할 경우 군생활을 그만두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대부분 왕족은 비행사로 근무합니다. 여왕의 장손 윌리엄(해리의 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에 입대, 조종사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리는 육군 전투병으로 최전선에 나선 것입니다.

그가 배치된 곳은 탈레반과 500m 거리를 두고 대치한 곳입니다. 수시로 포탄이 날아듭니다. 해리는 적의 동정을 탐지해 후방 아군(주로 미군 전폭기)의 지원을 유도하는 역할입니다. 최전방 진지를 지키고 주변을 순찰하는 업무도 다른 병사(주로 구르카 용병)와 같이 수행했습니다.

두 번째로 뉴스가 나오기까지 지켜진 영국 정부와 언론 간의 신사협정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BBC에 따르면 영국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언론인들을 만나 ‘왕자의 참전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대신 (사후 보도를 위한) 취재에 모든 편의를 지원해 주겠다’는 신사협정을 맺었다고 합니다. 보도는 왕자와 소속 부대를 위험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영국 언론들은 왕자가 참전 직전, 참전 이후 전장에서의 인터뷰 등을 충분히 했습니다. 대신 보도하지는 않았죠. 그러다 미국의 인터넷뉴스 드러지리포트가 보도하는 바람에 영국 언론들도 일제히 보도를 시작했고, 왕자는 곧바로 귀국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언론을 위한 정보 제공에 최선을 다했고, 언론은 왕자와 소속 부대의 안전을 위한 비보도 원칙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제대로 된 선진국의 정부ㆍ언론 관계입니다. 노무현 정권에서 정부ㆍ언론 관계는 매우 일방적이고 적대적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선 선진적인 정부ㆍ언론 관계가 정립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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