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4. 나의 은인‘베니 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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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가수 데뷔 직전의 필자. 고교를 졸업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짧은 머리였다.

가수 패티 김의 운명이자 음악 스승이며, 작곡가로서 파트너였던 분이 박춘석 선생이라면 나에게 가수의 길을 열어준 분은 미8군에서 ‘베니 김 쇼’로 유명했던 김영순씨였다. 베니 김은 김씨의 예명이다.

나는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딱히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도 없어 오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취직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당시 여자가 흔히 할 수 있었던 비서직과 일반 사무직은 커피를 타거나 타이핑 같은 잔심부름이고 따분한 일이라는 생각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스튜어디스를 꿈꾸었다. 지금과 달리 여자가 할 수 있는 전문직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라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멋지게 살고 싶었다. 그러다가 외교관 부인이 되어 정말 세계 곳곳에서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나며 사는 게 얼마나 좋을까 하는 다분히 소녀적인 공상을 하기도 했다. 막연한 생각이기는 했지만 한두 번인가 스튜어디스 채용 시험을 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오빠 친구였던 기타리스트 곽준용씨를 우연히 명동에서 만났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고, 그때마다 오빠들과 어울려 같이 음악을 듣고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졸업하고 취직 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더니 대뜸 “너 어렸을 때 노래 잘했는데, 노래 한번 해볼래”라고 했다. 그 순간 왜 그렇게 귀가 뻥 뚫리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던지 마치 깜깜한 밤길을 걷다가 환한 빛 줄기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내가? 노래를? 가수가 된다고?

그때까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는데, 그 순간 “아, 바로 이게 내 운명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곽준용씨가 나를 김영순씨에게 데려갔다. 요즘으로 치면 길거리 캐스팅인 셈이다. 곽씨는 그를 미8군 쇼에서 가장 잘 나가던 ‘베니 김 쇼’의 단장, 베니 김이라고 소개했다. 외국영화에서나 보던 짙은 갈색 홈 가운을 걸치고 나와 곽씨를 맞은 그는 나에게 노래 한 곡 불러볼 테냐고 했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에게 가르쳐주기까지 했던 ‘You don’t know me’와 ‘Memories are made of this’를 부를 생각으로 자신 있게 그러겠다고 했다. 마침 거실 구석에 작은 피아노 한 대가 있었다. 김영순씨가 반주해주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렇게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지….

그동안 그렇게 수없이, 또 수업시간에 불려나가 친구들 앞에서 여러 번 불렀던 그 노래의 가사가 가물거리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피아노 반주보다 더 크게 쿵쾅거리는 내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열에 달떠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두 곡을 불렀다. 김씨가 피아노 건반에서 손을 떼고 나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노래 차~암 잘 하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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