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열며>나라가 온통 새고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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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잔인한 4월」이 그런대로 지나가는 듯했는데 한순간에 또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고 수백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대구에서 터지고말았다. 근래에 상상도 할 수 없던 사고들이 땅.바다.호수.하늘에서 빈발하면서 다음에는 땅속에서 터지지 않겠느냐고 하더니 끝내 그 입찬소리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무궁화호 열차가 느닷없이 전복돼 78명이 숨지고 1백63명이부상한 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이것이 한국철도 1백년역사의 최대 참사라고 입술을 깨물었다.목포에서 비행기가 떨어져 66명이나 숨질 때 우리는 기상상태를 탓하기도 하고 무 리한 운항이 빚은 비극으로 돌리고 말았다.
그러나 부안에서 페리호가 침몰하면서 2백92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엄청난 참사를 보면서 이것은 정말 심상치 않은 징조라고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끝내 성수대교가 무너져내렸다.그것은 다리가 내려앉은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다리가 꺾여 내린 것이며 우리의 자존심,우리의 신뢰감이 송두리째 내려앉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회개할 줄을 몰랐다.
네 책임이다, 네 잘못이다 하며 따지다 결국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그러더니 이제는 유람선이 호수에서 불이 나 수십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마침내 서울 아현동에서 터진 도시가스 폭발사고를보고는 아 예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언제까지 참고 앉아 있어야만 하는가.사고와 변고의 「세계화」를 이루어가려고 하는가.이번의 대구폭발사고에서도 또 여전히 옛 필름을 다시 보고 있는 것 같다.
출연진만 바뀐 채 우리는 정해진 대사를 듣고 있 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민 앞에 사과,책임자의 철저한 조사와 엄벌,사고 원인의 규명,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긴급 보상 등등.
그런데 그게 아니다.어찌하여 국회의원이 이미 대구지하철공사 안전관리의 허술함을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는데도 전혀 시정되지 않고,심지어 가스누출이 심각하다는 상황을 긴급 보고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가.
더구나 아현동 가스폭발로 그토록 처절했던 사고를 경험한지 불과 4개월만에 이런 끔찍한 가스참사가 또 일어났으니 이제 또 어디에서 무엇이 새고 있을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이것은 결국 나라 안이 온통 새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증거다.이것은 도대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도층의 오만 때문이라는 표징이다.이러한 사고는 결국 거짓말만 되풀이해 온 그때그때의 미봉책이 낳은 비극이 아닌가.
이제 오만과 거짓을 버려야 한다.그래서 국민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아우성과 외치는 소리를 정말 겸허히 들어야 한다.가스폭발사고를 하나의 변고로 보지 말고 우리나라 전체에 주는 하나의 심판이며 경고의 소리로 들어야 한다.그 래서 정말 개혁될 것은 개혁돼야 한다.
그 개혁은 제도나 기구의 개편이 아니라 이러한 사고를 보면서역사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어야 한다.그리고 분명한 것은 개혁이란 이것저것 파헤치고 메우는 작업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버리고진실로 모든 사람이 나눌 수 있는 꿈과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개혁은 위정자들이 진실로 백성의 고통을 고민하는 모습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제는 정말 국민이 모두 나설 때가 됐다.남의 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끝까지 밝혀내고 철저히 고발하며 힘을 모아 고쳐나가야 한다.
5월에는 정말 우리 모두 달라지자.
…………………… ◇필자약력▲51세▲加 토론토大 신학박사▲성공회신부▲現 성공회대학교 총장▲저서『대한성공회백년사』『현대신학개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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