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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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경주 천마총에 묻힌 것으로 보이는 신라 제22대 지증왕(智證王)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음경의 길이가 한자 다섯치나 됐다.걸맞은 배필이 없어 신하를 두루 전국에 보내 왕비감을 찾게 했다. 한 신하가 모량부(牟梁部) 숲속을 가다 동노수(冬老樹)나무 밑에서 북만한 큰 똥덩어리를 봤다.동네 사람에게 물어보니상공(相公)의 딸이 빨래하다 눈 것이라 했다.그녀는 키가 일곱자 다섯치나 됐다.
이 일을 아뢰자 왕은 크게 기뻐하여 그녀를 왕비로 삼았다….
『삼국유사』의 서술 토막이다.
이 「동노수」라는 낱말의 씀새에 주목해야 한다고 서여사는 일러주었었다.
동노수라는 나무는 없다.
상공의 딸이 그 나무 아래서 똥 눈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똥 누었소」의 옛말 「동놋수」를 나무 이름처럼 쓴 것이다.
동시에 「동노」라는 글자는 그때가 겨울철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또한 그 나무가 노목(老木)이었다는 사실까지 암시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서여사는 덧붙였다.
「상공」이란 이름에 대한 추리도 재미있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증왕 왕비 박씨의 아버지는 등흔(登欣)이창(伊滄)이다.재상(宰相)급의 고위 관리였으니 「상공」이라불렸을 법도 하나 여기엔 또 한가지 까닭이 있어 보인다고 한다. 「상(相)」이라는 한자의 일본 옛 새김은 「아히」 또는 「아후」다.
이것을 우리식으로 고치면 「아비」「아부」 또는 「아빌」「아불」로 발음된다.「아우르다」의 뜻이다.
한자는 백제 왕인(王仁)박사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다.4세기 말,5세기초로 꼽힌다.
백제사람이 전했으니 당연히 백제식 음독(音讀)과 훈독(訓讀)으로 가르쳤을 것이다.그것이 3백년 사이에 차츰 일본식 발음으로 바뀌어 오늘의 일본식 음.훈독이 되었다.일본식 한자의 옛 새김을 통해 우리 고대어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이때문이라고서여사는 강조한다.
「상」은 「아비」등으로 읽었다.「아비」는 「아버지」의 「아비」와 소리가 같다.그래서 왕비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박공(朴公)은 「상공」,즉 「아비공」이라 불렸을 것이다.
한 낱말에 두가지 이상의 뜻을 포개 담아 사물을 표현하는 것은 7세기의 고구려.백제.신라,그리고 왜에 걸쳐 널리 유행한 서술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무렵의 삼국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일본과 밀접한관계를 맺고 있었다.지금도 매한가지다.
궂은 일,좋은 일…일마다 이 이웃과 얽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종손 아기 일만해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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